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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평론 2) - 벽혈검(碧血劍)

kcyland 2016.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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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세의 애정과 원한, 난세의 슬픔
     -<<벽혈검(碧血劍)>>
 
  <<벽혈검>>은 김용이 두번째로 쓴 장편 소설로,  1956년에 처음으로 지어졌
으며 후에 두 차례에 걸쳐 큰 수정을 가해, 오분의 일 정도의 길이가 증가되었
다. 김용 선생은 이 책의 <후기>에서 <수정  가운데서도 이 책의 수정에 가장
많은 힘을 기울였다.>고 말한 바 있다.
  김용 자신의 견해를 살펴 보자.
 
  <<벽혈검>>의 진정한 주인공은 사실 원숭환(袁崇煥)이고, 그  다음으로는 금
사랑군(金蛇郎君)을 들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책 속에서 정식으로 출현하지는
않는 인물이다.
  원승지(袁承志)의 성격이 선명하지 않고, 또 원숭환도  그다지 잘 쓰지 못했
기 때문에, 1975년 오월과 유월 사이에 다시 <원숭환평전(袁崇煥評傳)>을 써서
보충하였다.
 
  이것은 작가 자신의 견해이므로 우리는 그가 말하는 대로 대충 들어두는 수
밖에 없다. 아니, 적어도 좋은 참고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부 믿
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김용 선생은 무협 소설은 잘 쓰지만,  그 소설의 <후기>는 뜻밖에도 사람들
의 생각과는 다른 면이 보인다. 물론 그 전부가 크게 흥을 깨뜨린다거나, 패배
자적인 느낌을 준다거나, 평범하고  재미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내
생각에는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다고 느껴진다.
  소설이 이미 완성되어 우리에게 보여졌을 때,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
떻게 볼 것인가는 작가의 의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숭환평전>을 살펴 보자. 그 안에서 우리들은 김용 선생이 불행한 고인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그 불행한 운명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기분이 충만하고, 분
명한 관점으로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써내고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더
욱 가치 있는 것은 이  <평전>의 중요한 독창적 견해에  따르면, 숭정(崇禎)이
원숭환은 죽여야 했던 근본 이유는, 이간하는 계략에 넘어가 그랬던 것이 아니
라, 이 두 사람의 성격이 충돌했기 때문이라고 본 점이며, 이전에는 이러한 관
점을 제시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좋게 말하자면, 이 평전은  '역사적 견해'와 '예술'의 장점을  겸하고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이런 보충하는 형식의 작품은 역사서 같지도 않고, 문학같지
도 않은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에는 당연히 그
만한 이유가 있다.
  작자가 무엇을 쓰든지, 그것은 모두 작가의 자유일 뿐 다른 사람들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 다만 김용 선생이 자못  득의양양해 하는 이 <원숭환평전>이 사
실상 <<벽혈검>>과는 그리 큰 관련이 없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전자는 한
편의 역사서이며, 후자는 한 편의 무협 소설이다.  만약 억지로 진지하게 비교
한다면, 도리어 겉과 속이 뒤바뀌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평전>이 만약 재미가 있다면  한번 쯤 보는 것도  무방할 것이요, 설사
보지 않는다 해도 무방한 일이다.  나는 그것을 읽든 안  읽든 우리가 <<벽혈
검>>이라는 이 소설을 읽는데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고 생각한다.
  본론으로 돌아가 <<벽혈검>> 자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작자는 그 주인공
이 원승지와 하청청(夏靑靑)등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의 아버지인 원숭환과 금
사랑군 하설의(夏雪宜)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어쩌면 분명 까닭이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 책 가운데 원승지라는  사람의 성격을 선명하지 않게
쓴 것 역시 분명히 까닭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 같
지도 않은 이야기일 뿐이며, 그런 까닭 때문에 이 책이 작가의 '회심의 역작'
이 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 책은  김용의 두번째 작품으로, 비록 세밀
하고 뛰어난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독창적인 점은
지니고 있어서 나름대로의 풍격을 이루고 있다고  할 만하다. 즉 상품(上品)의
수준에 달하는 가작이라고 할 여지가 조금은 있다는 말이다.
 
    一. 역사와 전기가 한 곳에서 융화되다.
 
  작가는 원래 이 작품의 주인공을, 등장하지 않는 두 인물인 원숭환과 하설의
로 구상했었다. 이것은 서구 문학에서 자주 쓰이는 작법이다. 하지만 등장하지
않은 두 '주인공'을 잘 써내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원숭환평전>을 써서 그럭
저럭 유감을 메꾸어 보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평전이  원작에
보탬이 되는 점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족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 점에 대해 우리들은 앞 부분에서 이미 잠깐  언급한 바가 있다. 다만, 그
안에 담긴 이치를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이치는 복잡한 것이 아니다. 즉
<<벽혈검>>은 한 편의 무협 소설이며, 한 편의 전기(傳奇)  작품이므로 반드시
'정말로 여길' 필요는 없지만, <평전> 자체는 '역사서'이기 때문에 마땅히 역
사적 인물과 관련되는 한 편의 학술 저작일 필요가 있다. 이 두가지 사이의 차
이와 구별은 말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만약 역사서인 학술 저작으로써 전기(傳
奇)인 무협 소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함정에 빠지는 격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원숭환(袁崇煥)이라는 진실한 역사적 인물과,  하설의(夏雪宜)라는 허
구적인 전기의 인물을 <<벽혈검>>의 등장하지 않는 두 주인공으로 삼는  것만
큼은,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역사적인 학술'과 '전기적인 무협 예술'을  섞어
서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 반대로 김용 선생의 큰 창조이자,
김용 소설의 성취와 가치를 존재케 하는 부분이 된다. 그 안에 담긴 이치는 우
리가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이라는 소설을 논술할 때  이미 전부 언급한
바 있다.
  이 작품은 바로 <<서검은구록>>의 '방법'대로 발전시킨 것이며, 또한 이 방
면의 성취는 <<서검은구록>>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고도 할 수 있다.
  <<서검은구록>>의 문장을 분석할 때, 우리는 이미 역사 작품과 전기 작품은
자연히 다를 수밖에 없음을 확인한 바 있다. 이런 차이점은 누구나 다 아는 바
일 것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사이에는 또한  동일한 부분도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더 깊은 면에 있어서 '역사적'  인물이 구체적인 인물을 빌려(실존 인물
이든 허구 인물이든) 보편적인 인성을 지닐 수 있었다는 점이다.
  김용 선생의 무협 소설의 오묘한 점은(이것은  아마도 중국 고전 소설의 오
묘한 점이며, 이것이 김용 선생에  의해 크게 발양되어 하나의 새로운  경계로
도약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 역사적 인물과  전기적 인물, 역사적
인 사건과 전기적인 고사, 역사적인 배경과 전기적인 줄거리를 한곳에  융화시
킴으로써 일종의 격식을 갖추었으며, 역사가 반, 전기가 반이고, 또 역사도  되
면서 전기도 되며, 전기 속에 역사가 있고 역사  속에 전기가 있는, 그러한 소
설 형식과 경계를 창조해 내었으며, 인성, 인생 및 역사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상상력과 사고라는 두가지 장점을 겸하였고, 전기와 역사의 미를 아울렀고, 재
미있음과 배울점을 전부 구현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원숭환은 역사적 인물로서, 명말(明末)에 청(靑)나라에 대항한 유명한 장군이
었다. 그러나 하설의라는 이 금사랑군은 철두철미하게 허구적인 전기의 인물이
다. 얼핏 보기에 이 두 명을 함께 써낸 것은 대단히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생
각된다. 즉, 사람들이 이것을  읽으면 이것을 진실한 역사적  이야기로 보아야
좋은지, 아니면 허구적인 전기 이야기로 보아야 좋은지 어리둥절하게 되기  쉽
고, 그래서 결국 잘못하다가는 반감을 사기가 쉬워, 두 방면 모두 제대로 살피
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게 된다.
  전기를 읽은 사람이 원숭환의 이야기를 읽게 되면, 어떤 사람은 그것을 '전
부 믿어버리기' 쉽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그것을 '재미가 없다'느니  '부족하
다'느니 '작품도 아니다'느니 하면서 싫어할지도 모른다. 또한 역사서를  읽은
사람이라면 분명 하설의의 사람됨과 사건이 전부 엉터리라고 하면서,  '역사의
어디에 이런 사람이 있었고,  어디에 이런 일이  있었던가?'라고 하면서, 이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싫어할 것이다.
  <<벽혈검>>에서 등장하지 않는 두 주인공의 성격,  품성, 내력, 근본을 따지
는 일은 각자가 천차 만별로 다를 것이며 서로가  자기의 생각만을 옳다고 주
장하기가 쉽다. 한 명은 <강산(江山)>의 대들보요, 한  명은 <강호(江湖)>의 거
장이다. 한 명은 착하고 충성스러우며, 한 명은 어리석고 악질적이다. 한  명은
청나라에 대항하고 나라를 보위하면서 큰 인의(仁義)를 보여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으나, 한 명은 원수를 갚거나 독을 품고 한을 지녀 악한 행동만 일삼아 사
람들은 그에 대하여 입에 올리는 것조차 거린다.
  이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은 중천에 뜬 밝은 달과 같고, 한 명은 음산한 계곡
의 독벌레와 같기 때문에  자연히 동시에 언급하기가 난해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나란히 <<벽혈검>>의 주인공으로 삼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한 명은 선하고, 한명은 악하고, 한 명은  아름답고, 한 명은 추하고,
한 명은 공(公)을, 한 명은 사(私)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동
일한 층차나 동일한 수준의 선상에 놓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어찌
해야 좋은가?
  <<벽혈검>>의 묘한 점은 이 두 사람이 근본적으로 정식으로 등장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나 타당하지 않은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에 대해
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게끔, 일일이 '피해 가고'  있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그들의 후예들이다. 즉, 원숭환의 아들인 원승지와, 하설의의 딸인
하청청이 그들이다.
  그들은 강호에서 서로 만나 애정 문제로 얽히게 되었으며, 그들이 바로 강호
의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사건이 많든  적든, 또 기이하든 않든,  상관 없게 된
것이다. 이런 것을 일러 '진짜가 허구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
  <<벽혈검>>은 원승지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런 이
야기는 <강호(무협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
의 원수 집안이 일반적인 무협 소설에서의 원수 집안과 크게 다르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의 원수 집안은 청나라  임금인 황태극(皇太極)과 명말 황제인
숭정이었으므로, 또한 '국가적 원한'과 '집안의 원수'가 뒤섞여 복잡하다고 하
겠다. 그의 원수가 바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 원
수를 갚는다는 줄거리가 일반적인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
역시 '허구가 변하여 진실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벽혈검>>이라는 이 소설은 진실이 변하여 허구가 되고, 또 허구가 변하여
진실이 되며, 이리 저리 변화하여 역사와 전기가 결국은 '변화막측'이라는  한
곳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독자의 주의력과 흥미 역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
게 된다.
  여기에서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진실이 변하여 허구가  된다>는 문제로, 이것은  우리가 이 소설을
읽기에 앞서 반드시 분명하게 알아야  될 문제인 것이다. 즉,  <<서검은구록>>
및 <<벽혈검>>과 같은 종류의 소설을 체제 면과 본질 면에서 살펴 보자면, 무
협 소설이자 전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허구적인 줄거리와 인물 사건으로
이루어진 <허구>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속에 출현하는 건륭 황제(乾隆皇帝),
복강안(福康安), 원숭환(袁崇煥), 황태극(皇太極), 범문정(范文程), 숭정(崇禎), 이
자성(李自成), 이암(李巖) 등등의 몇몇  역사적 인물들은 이 소설  속에서 이미
'소설화' 되고 <허구적으로 전기화(傳奇化)> 되어 있다.
  그들은 소설에서 절대로 빠져서는 안되는  일부분이고, 그들의 인물 사건과
행동은 소설이지 역사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곧 소설 속에서 그들의
지위와 작용이 진가락(陳家洛)이나 원승지, 하청청, 하설의 등등과 같은 허구적
인 인물과 일반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소설 속의 원승
지 같은 인물은, 역사 인물인 유종민(劉宗敏), 이암,  우금성(牛金星), 송헌책(宋
獻策) 등과 똑같이 '예술이라는 궁전의 신하들'이며, 반대로 모든 역사 인물은
그런 몇몇 강호 재야의 전기적 인물들과 전기 소설이라는 예술의 궁전 가운데
에서 역시 그 '궁전의 신하'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소설에 등장하는 원숭환과 하설의, 건륭 황제와  진
가락에 대하여 마땅히 '동등하게 대해야' 하며, 절대로 어떠한 '차별도 있어서
는 안되는' 것이다.
  좀 더 깊이 따져 보면, 이른바 <허구가 변하여 진실이 된다>거나,  혹은 <기
이하면서도 진실성을 지니게 된다>는 문제를 살펴 보아야 한다. 이 문제는 분
명하게 말하기가 매우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이해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앞에서 언급한 <역사적 인물>과 <허구적인 전기 인물>은 소설 속에서  모두
<소설의 예술 형상>으로 변화된 후에,  혹은 사실이기 때문에 심각하고,  혹은
허구이기 때문에 전기적인, 그러한 경력과 조우를 드러내게 된다. 일정한 역사
적 분위기 속에서, 예술적으로 가정한 상황 속에서, 보편적인  인성(人性) 하에
서, 우리들은 더 높은 단계에서 그들을 동등하게 대우할  수 있게 되며, 또 마
땅히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모두 보편적이면서도 진실한 인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들의  경
력이 얼마나 전기적인지, 혹은 얼마나 불가사의한지를  막론하고 말이다. 그렇
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진실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예술적 진실,
철학적 진실, 역사적 진실 등등이, 이 소설에서  표방하는 인성의 진실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당연히 모든 작가와 모든 작품이  전부 이런 경지에 도달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이 이처럼 진실이 변하여 허구가 되고, 또 허구가 변하여
진실이 되는 작품을 써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와 반대로, 이렇게 하는 것,
이렇게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했을 경우 이처럼 좋아지는 것이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는 안타까울 정도로 적다.
  방대한 무협 소설의 세계에서 이와 같을 수 있는 것은  김용 등의 한 두 사
람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김용은 의심할 여지 없이 바로 이 한 두 사람 중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벽혈검>>을 말할 수 있다.
 
    二. 서두에서 결미까지 잘못된 것을 바로잡다.
 
  소설 <<벽혈검>> 서두의 제  1회는 제목이 <위태로운  나라는 촉도로 가게
하고, 난세는 만리 장성을 무너뜨린다(危邦行蜀道, 亂世壞長城)>는 것이다.
 
  명나라 성조 황제(成祖皇帝) 영락(永樂)  6년 8월 을미일, 서남(西南)의  해외
발니국(渤泥國)의 국왕 마나야가나내(麻那惹加那乃)가  자식들과 동생, 여동생,
세자 및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조정에 와서, 용뇌(龍腦) 학정(鶴頂),  대모(玳瑁),
서각(犀角), 금은 보화등 여러 물건들을 진상하였다. 그러자 성조  황제가 크게
기뻐하여 노고를 칭찬하며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이런 얘기를 쓰고 있어서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약간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든다. 그 이야기에 이어서 비로소, 발니국(渤泥國)의  나독(那督)인 장민수(張
民數)의 자손인 장신(張信)에게는 슬하에 오직  아들 하나 뿐이었는데, 이름을
조당(朝唐)이라고 지어 그 이름에 고국을 잊지 못하는 뜻을 담고  있다는 얘기
를 한다. 장조당(張朝唐)은 사서(四書)와 오경(五經)을 숙독한  이후, 자못 중국
의 풍물을 흠모하는 마음이 생겨서, 대륙인 명나라에서 관리로 채용되고자  하
는 공명심을 품고, 시동과 수행원  및 금은 보화를 가지고 대륙에  도착하였지
만, 뜻하지 않게도 육지에 오르자 큰 어려움을 만난 데다가, 군대와 비적이 전
부 그의 재물을 탐내어 그를 해치려고 했기 때문에 온갖 고난을 겪게 된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야 도망쳐 나와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으며, 상
갓집의 개처럼 급하게 해외의 발니국으로 돌아갔다.
  이런 것을 일러 소위 '차라리 태평 시대의 개가 될지언정, 난세의 사람은 되
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장조당이 대륙에 도착했을 때는, 불행하게도 바로 난
세가 몰아쳐 오던 시기였으며, 명나라의 관병 또한 강도와 다를 바 없었고, 오
히려 강도보다도 더 심할 정도로 사회가 극심한 부패와 혼란에 시달리고 있던
때라서 겪게 된 일들이었다.
  <<벽혈검>>의 이러한 서두는 마치 한 단락의 여담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금
이라도 총명한 독자라면 이 도입부가 책 속의 주인공 원승지와 <산종(山宗)(원
숭환의 원수를 갚기 위한 조직)> 등의 진짜 주인공들을 이끌어내기 위한 부분
이라는 점을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이다. 일단 진짜 주인공이 등장하자, 장조당
은 과연 소리도 없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가 발니국으
로 되돌아 갔다는 점마저도 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공교롭게도, <<벽혈검>>이라는 이 소설의 결미에 이르면, 운 나
쁘던 장조당이 갑자기 또 대륙에 가서 벼슬을 얻고자 하는 공명심이 발동하여
다시 대륙으로 오게 되었으나, 예전과 마찬가지로 관병에게 잡혀 재물을  탐내
는 사람들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하다가, 다행히 원승지에 의해 구조되는 장면
이 나온다. 다만, 이 때의 원승지는 강호의 명문 출신의 대 영웅이기는 했어도
실망하고 의기소침해져서, 다시 강호의 산림으로  돌아가 은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일 뿐이며,  이때의 '관병(官兵)'은 이미 명나
라의 관병이 아니라, 온 천하에 이름을 날리고 천하 백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틈왕(闖王) 이자성(李自成) 수하의 '관병'이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이처럼 장조당은 두 차례에 걸쳐 중국에 왔지만, 대동소이하게 재산을  빼앗
기고, 생명을 해하려는 사람들을 만났으며,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구사일생으
로 살아나곤 했으니, 이것을 일반적인 여담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겠
다.
  아주 공교로워 보이는 이 불행한 운명을 비교해 보면, 명나라가 쇠퇴하자 천
하의 백성들은 고통과 재난을 겪게 되어, 평안하게 살고자 하는 희망이 사라져
가고 있을 태, 틈왕이 흥기하여 천하 백성들로 하여금 희망과 믿음을 갖게 하
고 <그들을 먹이고 입혀 줄 것이니, 대문을 열고  틈왕을 맞이하자. 틈왕이 오
면 양식을 빼앗기지 않아도 된다>느니, 또 <아침에는 오르는  것을 구하고, 저
녁에는 합하는 것을 구하니, 요즈음의 가난한 한족은 살아가기가 어렵다. 아침
마다 문을 열고 틈왕을 배알하여 모든 사람이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
자>라느니 하던 당시의 세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틈왕은 정작 황
제가 되고나서, 도리어 아주 재빠르게 자신이 보통 백성이었다는 것을  잊고서
자기가 진정한 천자라고 말하며, 부하들이 마음대로 횡행하며 재물을 약탈하고
백성들을 해치는 것을 용납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위 <흥(興)해도 백성은 고통스럽고, 망(亡)해도 백성은 고통스
럽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여담 같은 말로 미루어진 서두와 결미는, 작가
의 일종의 정교한 예술적 안배이자 구조 방식으로써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거나 <처음과 끝이 서로 호응한다>는 형식을  구현하고 있일 뿐만 아니라, 형
식상의 완정된 통일을 이루는 동시에 그 안에 역사의  깊은 뜻과 사회의 부패
와 구민의 고통에 대한 비분과 불만의 감정에 대한  통찰까지도 담아 내고 있
는 것이다.
  <<벽혈검>>의 서두와 결미에는 여전히 처음과 끝이 서로 호응하고 있는  또
다른 사건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소설의 도입부에서 장조당 같은 사람들이 산
종 친구들의 집회 장소로 갔을  때, 원승지의 부친이자 청에 항거한  명장이며
높고도 큰 명성이 있는 공신인 원숭환이, 고집 불통에다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
였기 때문에 간신들이 이간질하는 계략으로  황태극을 꼬셔서, 결국 황태극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서술된다.
  <<벽혈검>>에서는 바로 이 때문에 흥기하게 된 원숭환 부대의 옛 장수들 및
그의 아들 원승지가 원수를 갚고 한을 푼다는 줄거리를 쓰고 있다. 이것은 더
이상 어떠한 여담의 성격도 아니게 된다. 이것은 바로 이 책의 줄거리가 뻗어
나가는 주요 원인이자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원숭환의
경력 및 평생의 사적과 그 사람됨을 수시로 제시하고 있다. 그 사람됨에 대해
서 모든 사람들이 경배했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의 진상을 알게  되면 누구나
숭정 황제를 충성하고 선량한 사람을 죽인  악독하고 잔인한 인물이라고 욕하
게 된다.
  하지만 숭정과 다를 바 없는 패거리가 또 있는데도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가
기가 쉽다. 그들에 대해서는 <<벽혈검>>의 결미  부분에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자성이 공신인 이암을 핍박하여 죽게 만드는 장면이다.
이암과 그의 처인 홍낭자(紅娘子)의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
했었으며, 그가 이자성을 위해 쌓은 공로는 원숭환이 명나라와 숭정 황제를 위
해 쌓은 공로에 결코 뒤지는 바가 없다. 또한 이암의 인품이나 정조도 결코 원
숭환에 비해 손색이 없다. 이 생동감 있는(원숭환의 피살은  책 속에서는 한번
도 정면으로 드러난 적이 없는데 반하여) 이암이라는 대 영웅, 대 호걸, 대 충
신, 대 협사도 결국 이자성에 의해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만 것이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비통과 의분을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어째서 우둔하고 고집 센 숭정  황제가 이처럼 행동하게 되었으며, 영웅  호걸
이자성도 어째서 이처럼 행동하게 되었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숭정이 대표하는 것은 쇠퇴하고 몰락한 명나라이다. 따라서 그가 도리에  어
긋나게 행동하고, 일을 거꾸로 처리하고, 우매하고 악독한  짓을 하는 것은 별
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민심을 얻고 대중을 끌어들였으며 백성의 희
망이요 구세주인 이자성까지 어째서 이처럼 행동하게 되었던 것일까?
  <<벽혈검>> 속에서 이자성은 분명 사람들의  경배와 추앙과 지지와 환영을
받는 인물이 아니었던가? <<벽혈검>> 속에서 이자성은 조금도 의심할 바 없는
대 영웅, 대 호걸이자 구세주가 아니었던가! 진실로 그에게는 '재야의 기운'이
있었고, 또 그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가 천하에 고통받는 백성들의 진정한
대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단 하나의 해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이자성이 고통 받
는 백성들을 위하여 그들의 복리를 도모하던 영웅이었을 때, 그는 왕조의 반항
자요 희망과 진보의 대표자이자  대다수 고통받는 백성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였지만, 일단 그가 성공하게 되자(왕위에 오른 것은 가장  선명한 성공의 징
표), 그 이후부터 그는 천천히 '변질'되어 갔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는 노예(왕위를  개인의 사유 재산으로 간주하였
으며, 다른 사람이 왕위를 탐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로 변하게 되었
고, 탐욕과 권력욕의 노예로 변하게 되었기 때문에, 봉건 왕조의 기초와 그 문
화를 진정으로 철저하게 개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저 <새로이 흥기함>으로써 <부패하고 썩은 것>을 대체한 데  불과하
였으며, <왕조와 그 연대를 고친  것>에 불과하였을 뿐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풍운을 호령하는 대 영웅 이자성 역시 불행하게도 봉건 왕조의 문화라는 그물
속에 떨어져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그 사실을 자각하지도  못
했던 것이다.
  이자성이 반대한 것은 아주 유약(柔弱)하고 부패하여 쇠퇴하게  된 명나라이
지, 봉건 왕조 및 그 문화의 구조 자체는 아니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자성이 진실로 명나라의  반역자이자 역적이었긴 하지만, 그
근본을 따져 본다면 그야말로 중국 봉건  문화의 불행한 '핏줄'의 산물이라는
점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를 보면서 우리는 김용의 다른  소설인 <<소오강호(笑傲江湖)>>에 나오는
일월신교(日月神敎)의 교주 임아행(任我行)을 연상하게 된다. 그는 어려운 지경
에 있을 때엔 사람들의 동정을 받을  만 했었다. 심지어 그가 원수를 갚을  때
역시 현명하게도 동방불패(東方不敗)가 규정한  <천추만재, 일통강호(千秋萬裁,
一統江湖)>와 같은 구호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대놓고 풍자하고  빈정대곤 했
었다. 그러나 그가 동방불패를 물리치고 그 동방불패의  권좌에 앉게 되자, 그
는 홀연히 어쩌면 이것은 그의 내심 깊숙한 곳에서는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생각일 수도 있는데, <천추만재, 일통강호>라는 구호와 그것이  표현하고 있는
이상이 그에게 아주 즐겁게 느껴진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또한 <교주를 알현
하라>는 등의 규정 역시 싫다기보다는 아주 기쁘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한 단락은 아마도 사람에게 있어서 왕좌 및 그것이 대표하는 권세의 '이
화(異化)'일 것이며,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  인간 본연의 권세욕의 '이
화'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슬프게도  한 시대의 영웅 호걸인 이자성  역시
끝내는 '역사적인 운명'이라는 그물과 밧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 <<벽혈검>>의 주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책 속에서
이름도 성도 모르는 눈먼 예술인이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관직이 없는 것은 이처럼 편안하구나!
            옛말에도 임금과 호랑이를 보좌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세번 죽었다 깨어나는 것처럼 어렵다고 했다네!
            자서(子胥)의 공이 커서 오왕(吳王)이 시기하고, 문종(文種)은
          오왕의 머리를 두쪽 냈다네!
            안타깝구나, 회음에서 당하니 무목(武穆)의 이름만 남았구나!
            누가 서장군(徐將軍)보다 공이 뛰어날 수 있겠는가?
            신기하다던 유백온(劉伯溫)도 별 수 없고 명나라  태조가 황
          제 된 후엔 문무 공신을 모두 없애 버렸네!
            그러니 머리를 돌려 죽음에서 도망쳐라!
            어서 머리를 돌려 죽음에서 도망쳐라!"
           
            "군왕은 명령을 내려  신하를 잡아들여, 병사들로  둘러싸고
          끈으로 꽁꽁 묶어 몸과 마음을 두렵게 만드네.
            미워할 수도 없으니, 그저 바다 속에 몸을 던지고 우물 속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네.
            후회한들 이미 늦은 일이네.
            서로 죽이며 서로 명예를 빼앗으니, 오늘의 한 줄기  영웅의
          혼과 어제의 만리장성은......"
           
   <오늘의 한 줄기 영웅의 혼, 어제의 만리장성>이야말로 소설 <<벽혈검>>의
비극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중국 역사의 비극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진정한 역사적 비극이다. 명나라도 이와 같았
고, 이자성도 이와 같았다. 만청(滿靑) 역시 이러했을 것이다.
  이것을 좀 더 깊은 심층에서 살펴 보자면, 중국 역사의 비극적 징후를 표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치세(治世)와 난세(亂世), 관군(官軍)과 의군(義軍), 한족
(漢族)과 만주족(滿族)을 막론하고 <스스로 만리장성을 무너뜨린다>는 역사 비
극에는 모두 그 필연성이 있는  법이다. 다만 난세 속에서 스스로  만리장성을
무너뜨린다는 비극이 더욱 분명하게 처참한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백성들
역시 절대로 <관직이 없어서 편안했던 것>이 아니라 소설의  서두와 결미에서
장조당과 다른 무고한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뜻밖의 재난>과 <불의의  재
난>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 백성들이야말로 국가 사적의 진정한 만리장성이었고,  매번 황제와 관가,
이민족 혹은 '의군'에 의해 무너졌던  존재들이었다! 그러니 어찌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비통함이 극에 달하게 되자, 원수를 갚고 한
을 푸는 '벽혈검'을 생각해내게 되는 것이다!
  백성들이든, 영웅 호걸이든, 그들은 그런  문화적 역사적 분위기 속에서,  또
그런 정치적 체제 속에서,  '만리장성'을 잘 보존시키기도  어려웠고, '스스로
무너지거나' 혹은 '공격' 당하는 것을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현대인들이  그
원인을 생각해 본다면 '법이 서지 않아 사람이 편안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자연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벽혈검>>에서 강호 녹림이 관가에 의해 무너지거나 이민족에 의해
공격 당하지는 않았으며, 또한 자유자재로 원하는대로 원수를 갚은 것처럼  보
이지만, 사실상 강자만 숭상되었을 뿐  <무법천지>의 상황에 불과할 따름이었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피비린내가 만연하고 사람들이 모두 위기에 처한
그 상황이야말로 중국 역사의 대 비극 중 한 장면일 뿐이요, 황제와 관가의 비
극이 서로 상반되는 것이면서도 서로가 상호 보완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
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벽혈검>>에 대해 더욱 신선하면서도 더욱
심도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된다.
 
    三. <<삼국연의(三國演義)>>와는 다르다.
 
  <<벽혈검>>은 어떤 의미에서는  중국 고전 소설  <<삼국연의(三國演義)>>와
비슷한 점이 있다. <<삼국연의>>에서는 동한 말(東漢末) 군웅들이 일어나 분분
히 나라를 세웠으나, 결국 조조의 위나라, 유비의 촉나라, 손권의 오나라  삼국
으로 정립되어 가는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으며, 중국인이라면 대부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 <<벽혈검>>은 주인공 원승지의 복수의 일념과, 그의 행적과 경험을 빌어,
우리들에게 만청 이민족이 호시탐탐 관동(關東) 지방을  노리고, 이자성의 <틈
왕의 군대>가 민의를 모아  관서(關西) 지방에서 봉기하여 대명나라가  풍파에
시달리다가 결국 망하게 되는 당시의 천하 대세를 서술하고 있다.
  <<삼국연의>>라는 책은 객관적으로 진실을 서술했다는 점은 볼만하지만, 많
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이, 작가가 유비의 서촉(西蜀)을 인정하고, 유비를 정
통으로 주장하는 독단적인 생각을 일관하면서 그를 추종하고 있기 때문에,  어
느 정도 편견과 <정통(正統)>이라는 관념에 얽매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벽혈검>>은 원승지의  생각과 견문, 사고와 행동을  빌어 당시
삼국의 형세와 사람들과 사건들을 묘사함에 있어 어느 정도 편견이 있기는 하
지만, 결국 '사물을 초월'하여, 아주 높은 역사의  단계에 서서 역사를 투시하
고 있기 때문에, 그 사상적 수준은 <<삼국연의>>보다도 한 단계 더 높다고 하
겠다.
  한인들의 눈에는 만명(晩明) 왕조가 비록 <도(道)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더 나아가 임금은 우둔하고, 신하들은 모두 간사하다고 생각되기는 했지만, 어
쨌든 그래도 <정통>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 우둔한 임금과 간사한 신하들
이, 충신과 선량한 백성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이 주인공의 부친이 살해되는 것
과 같은 원한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청나라의 황태극(皇太極)은 비록 이민족이었지만, 중국 관내에 들어와 한 왕
실을 이어 통치한지 이백 년  동안, 공적과 실책, 원한과  은혜가 뒤섞여 그에
대해 뭐라고 비평하기가 힘들었다.
  이에 반해 틈왕 이자성은 <관가(官家)가 백성을 핍박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천하의 고통받는 백성들의 희망을 일시에 한 곳으로 모아 내기는 했지만, <정
통>의 시각에서 볼 때, 그는 그저 하나의 재야 인사이자, <반적>에  불과할 뿐
이었다. <삼국>이라 할 수 있는  이 세 방면에 대해  평가한다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작가  김용은 원승지의 견해를 빌어 자기의  사상을
서술하였고, 원승지의 견해와 지식을 빌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여, 아주 특별
하면서도 초연하고 또 심오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책속의 원승지는 태도가 아주 분명하다.  그는 명나라에 반대하고 청나라에
항거하면서, 틈왕 이자성에게 희망을 건다. 이것은 그저  그의 <아버지가 살해
된 원한> 때문만이 아니며(그의 아버지인 원숭환은 청나라에 항거한 사람으로
유명했고, 바로 청나라에  항거했기 때문에 명나라  황제에게 피살되었으므로,
명나라와 청나라가 모두 그의 원수가 된다), 이것은 아마도  당시의 천하 백성
들이 모두 소망하던 바를 그 역시 소망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당시 천하의 백성들이 폭풍처럼 거세게 일어나  순식간에 봉기하게 된 이유
는 바로 이자성이 민의가 희망하는 바를 따라 봉기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원
숭지의 '생각(관점)'이야말로 '백성들의 소망'을  가장 잘 대변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들이 살펴 보아야 할 점은, 틈왕  이자성이
명나라를 몰락시키면서 내걸었던 것들이 사실은 <형식만  바꾸고 내용은 바꾸
지 않은> 것이었으며, 백성들을 고난에서  구해낸다는 것도 그저 사람들의 소
망이 만들어낸 환상과 열정 가득한 희망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후대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자성을 <구세주>처럼 창조해냈던 것도 이러한 해
석 때문이었다. 하지만 <<벽혈검>>에서는 이 점을 근본적으로 더이상 <원승지
개인의 원한>이라는 관점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한단계 더 높은 시간에서 진
정한 <흥(興)해도 백성들은 고통이요, 망(亡)해도 백성들은 고통>이라는 백성들
의 관점과 역사적 관점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이 소설의 사상적 의의와 경계
는 일반 무협 전기 소설에서의 범위를 훨씬 뛰어 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자
성에 대해 쓴 많은 '역사 소설'에 비해서도 수십배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벽혈검>>에서는 청나라 궁정에 대해 서술하면서, 비록 형수를 도적질하고
형을 살해하며 청나라 군주를  바꾸는 잔악무도함과 비천함에  대해 폭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황태극 이하 군신들이 <백성을 아끼는> 계획을 세우는
정세 역시 공정하게 써내고 있어서, 이로 인해 원승지로 하여금 <아무리 해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명나라를  망친 임금인 숭정 역시 인도
주의적, 동정적 시각으로 <그의 양 뺨이 홀쭉하게  들어갔고, 머리카락에는 백
발이 무성하고, 눈에는 실핏줄이 가득하여  매우 초췌한 행색>을 하고 있음을
묘사했다. 이 때 제위를 노리려던 간악한 음모는  이미 평정되었고, 그 우두머
리가 이미 제거되었지만, 숭정의 얼굴에는 번뇌와 불안감이 가득할 뿐, 조금도
기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원승지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가 황제 노릇을 한
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학대 당하는 일에 불과할 뿐이다. 마음속으로는 조
금도 즐겁지 않은 것 같구나.> 이렇게 김용은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아주 드
물긴 해도, 자기의 개인적 원한을 초월하여 사람에게 연민과 동정을 느끼는 인
도주의적인 숭고한 경지를 보여 주기도 한다.
  책 속에서 숭정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 적은 부분에
서나마, 숭정의 형상은 아주 날카롭고 웅건한 필력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그
<간략하면서도 심각한 묘사>야말로, 일반적인 '역사 소설'이나 '순문학'에 비
교해도 손색이 없는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는 이자성의 형상 역시 옹골지면서도  냉정하고 공정한 필치로 묘
사하고 있다. 이 대호걸이면서 존경받을만하고, 그러면서도  비참한 역사적 인
물은 아주 매력적이면서도 선명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되고 있다.
  소설의 제19회인 <오호라, 성군이 일어나도 백성들은 고생만 할 뿐이네(嗟乎
興聖主, 亦復苦生民>에는(제목도 본문 내용도 아주 재미있다.) 다음과 같은  단
락이 있다.
 
            이자성은 그 때 이미 황궁에 들어와 있었다. 틈왕의  군대들
          은 원승지를 알아보고, 그가 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했
          다. 용상에 이자성이 앉아 있고, 그의  곁으로 십여 명의 부하
          들이 옹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의관을 제대로  갖춰
          입지도 못한 한 소년이 대전 아래에 서 있었다.
            이자성이 말했다.
            "저 아이가 바로 태자(太子)이다!"
            원승지가 그 아이를 부축해 일으키자 이자성이 물었다.
            "너는 너희 집안이 어째서 천하를 잃었는지 아느냐?"
            태자가 울며 대답했다.
            "간신 온체인(溫體仁)과 주연유(周延儒) 등을 신임했기 때문
          입니다."
            이자성이 껄껄 웃더니 말했다.
            "철없는 아이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로구나."
            그는 즉시 정색하고 말을 계속했다.
            "내가 알려주겠다. 네  부친은 어리석어서 천하  백성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천하 백성들은 처참하게 죽어갔는데 그 수
          효가 수천 수만에 이른다. 그러니 어찌 참혹하고 잔인한  일이
          라 하지 않겠느냐?"
            태자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잠시 후에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그렇다면 빨리 저도 죽여 주십시오."
            원승지는 그의 꿋꿋한  기상을 보자 가련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이자성이 말했다.
            "넌 어린애에 불과하고 지은 죄가 없다. 내가 함부로 사람을
          죽일 수야 있겠느냐?"
            그러자 태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몇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이자성이 말했다.
            "말해 보아라."
            태자가 말했다.
            "저의 조상의 묘를 제발 훼손하지  마시고 부모님의 시신도
          잘 매장해 주십시오."
            이자성이 말했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부탁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
            그러자 태자가 말했다.
            "또 한가지, 백성들을 죽이지 말아 주십시오."
            이자성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어린애다운 말이로구나. 나 역시  백성이었다. 백성들이 경
          성(京城)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몰랐더냐?"
            태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백성을 죽이지 않으시겠군요?"
            이자성은 갑자기 걸치고  있던 옷을 젖히고  상체를 드러내
          보였다. 그의 가슴과 어깨에는 채찍에 맞아 생긴 상흔이  가득
          했다. 이를 보자 모두들 크게 놀랐다.
            이자성이 말했다.
            "나는 원래 아주 착한 백성이었다. 탐관오리에게 이렇게  참
          혹하게 맞은 후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흥, 너희 부자는 겉으로만 인자하고 의로운 척하며, 백
          성을 사랑한다고 했었다. 우리 군사들은 상하를 막론하고 너희
          집안 때문에 고초를 겪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태자는 묵묵히 고개를 떨구었다. 이자성이 옷깃을  바로잡으
          며 말했다.
            "이만 물러가거라. 네가 선왕의 태자인 점을 감안하여  너를
          왕에 봉하도록 하겠다. 우리  백성들이 옛날과 다르다는  것을
          네가 깨닫도록 하겠다는 말이다. 무슨  왕에 봉해주랴? 음, 너
          의 부친이 금수강산을 나에게 넘겨 주었지. 좋아, 송왕(宋王)에
          봉하겠다."
            그러자 옆에 있던 태감 조화순이 외쳤다.
            "냉큼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지 못하느냐? 어서 폐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하도록 해라."
            태자가 눈을 부릅뜨고 조화순을 노려보더니 돌연 손을 휘둘
          렀다. 철썩, 소리가 나면서  조화순의 뺨에 손가락  자국 다섯
          개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러자 이자성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좋다. 저 따위 충의를 망각한 간신은 맞아도  싸다.
          잘 때렸다. 여봐라, 이 놈을 끌어내어 목을 잘라버려라!"
            조화순은 놀라서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털썩 무릎을 꿇고
          머리를 연신 조아렸다. 이마로 바닥을 찍으니 이마가 터져  피
          가 철철 흘러내렸다.
            이자성은 조화순을 발길로 걷어차며 호령했다.
            "냉큼 꺼지지 못하겠느냐? 앞으로 한번만 내 앞에 나타났다
          가는 목숨을 보전하지 못할 줄 알아라!"
            조화순이 허겁지겁 달려 나가자 태자도 그  뒤를 따라 고개
          를 쳐들고 늠름하게 걸어 나가는 것이었다.
            이자성은 원승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 어린애가 제법 굳건하군. 난  저렇게 줏대 있는 사람을
          좋아하지."
            원승지는 말했다.
            "예."
            이 때 승상 우금성(牛金星)이 아뢴다.
            "주상께 아뢰옵니다. 명나라가 이미 망했다고는 하지만 잔당
          들이 남아 있어 나라를 되찾으려고 할 것이옵니다. 저  아이는
          굽힐 줄 모르는 기상이 잇으니 절대로  대왕께 귀순할 것같지
          않고 누군가가 그를 충동질하고 이용하여 반란을 일으킬 우려
          가 있사옵니다. 차라리 저 아이를 죽여버려 화근을 뿌리째  뽑
          는 것이 좋다고 사료되옵니다."
            이자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오. 그 일은 경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시
          오."
            (중략)
            수십 명이나 되는 군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한번이라도
          더 쳐다보려고 아우성을 치면서 진원원(陳圓圓)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더니  이윽고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이자성은 연거푸 술을 마셨다.  만면에 즐거움이 가득한  것
          이, 여러 사람들의 추태에 대해서 별로 개의하지 않는  모양이
          었다.
            이암이 앞으로 나서서 아뢴다.
            "대왕님, 오삼계(吳三桂)가 산해관(山海關)을  점령하고 있는
          데, 그는 거느리고 있는 병사가  사만이고, 요민족은 팔만이나
          되옵니다. 그들은 모두  호전적입니다. 대왕께서  이미 사신을
          보내 항복을 권유하셨으니, 그의 애첩을 오삼계에게  돌려주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그러자 유종민이 냉소했다.
            "흥, 오삼계의 군대가 사만 명을 무서워할 필요가 어디 있겠
          소? 북경성 안에는 숭정이 거느렸던 관병이 십만이 넘소. 거기
          에 우리 군사까지 합치면 무서울 것이 어디 있겠소?"
            그 말에 이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삼계의 사소한 일에 신경쓸 것 없소. 그가 항복하면 좋겠
          지만, 항복하지 않으면 쳐부수면 될 게 아니오? 오삼계가 제아
          무리 강하다  해도, 손전정(孫傳庭)이나  주우길(周遇吉)보다야
          강하겠소?"
            이암이 말했다.
            "대왕께서 북경(北京)을 얻으신 것은 사실이오나  아직 강남
          (江南)을 손에 넣지는 못하셨사옵니다."
            이자성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더 말할 것 없소. 술이나 마십시다. 지금은 술을 마시는
          것이 중요하오. 국가의 대사는 다음에 말하기로 합시다. 자, 드
          시오."
            "알겠습니다!"
            이암은 그렇게 말하고 물러서서 원승지의 옆에 앉더니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매사에 조심하시오. 특히 권장군을 조심하시기 바라오."
            원승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자성은 몇 잔의 술을 더  마신
          후에 외쳤다.
            "자, 이만 돌아갑시다! 하하하!"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탁자를 발로 걷어차  뒤집어 엎으며
          자리를 떴다. 나머지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이 단락에서 우리는 이자성의 성격과 모순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영웅적 포부를 지닌 당세의 대 영웅이자 대 호걸이었지만, 그의 말이나 행동거
지는 '정치적 지도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그는  백성이었
을 때는 존경을 받았지만, 지도자가 되자 사람들로 하여금 '유감'과  '놀람'을
느끼게 만든다.
  그가 자기 자신 역시 백성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은 것은 훌륭하지만, 일단
'용상'에 앉자 득의양양해져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관직을 주거
나 요구를 들어주는 일도 하고, 진취적인 생각도 하지 않게 되며, 심지어는 자
신이 어떠한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조차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가 성격은 호방해도 시야가 좁고 천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백
성들의 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으면서도 종국에는 <진명  천자>인 황
제가 되는 꿈 속에서 그  자신이 지난날 백성이었다는 기억을  점점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천하
를 타도하는 것>과 <천하를 석권하는 것> 사이의 모순이요, 영웅 노릇을 하는
것과 지도자 노릇을 하는 것 사이의 모순이며, '백성'의 신분과 '진명 천자(眞
命天子)'의 신분 사이의 모순이요, 재야의 영웅과 백성들의 희망을 한 몸에 받
는 '구세주' 사이의 모순이라 하겠다.
  그 모든 것을 김용 선생은 침착한 필치로 서술해가면서 점차 자세하게 폭로
해 나간다. 이 회(回)의 제목(오호라, 성군이 일어나도  백성들은 고생만 할 뿐
이네)처럼,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유감스럽게 만들고 감상에  젖게 만들었던 것
이다.
  그 후에 <스스로 만리장성을 무너뜨려> 결국 <산이 무너지듯이 전쟁에서 패
하는> 온갖 상황은 그 자신이 초래한  어찌할 수 없는 결과라 하겠다. 이곳에
바로 <<벽혈검>>의 독특함과 심각함이 있는 것이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자성을 당시의 일대 영웅으로 묘사하고, 서두에서
결말까지 그가 영웅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조금도 회의하거나 부정하지 않지만,
다른 한편으로 책속의 이자성은 또한 시종일관 그저 재야의 인사일 뿐이며, 운
명에 따라 생겨난 시대적 효웅(梟雄)에 불과하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동시
에 소설 속에서 천하 백성들은 이자성에게 희망과 기대를 걸고 있지만, 소설의
결말은 실망스럽게도 비극적으로 끝이 난다.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을 세번 정도 읽고 고민하게 만드는 점이다. 이것이 바
로 형태는 <<삼국연의>>와 비슷하지만, <<삼국연의>>와는 다르게 아주 초월적
이면서도 심각한 부분이다.
 
    四. 난세의 정과 원한, 난세의 슬픔.
  앞에서 우리들은 <<벽혈검>>이라는 이 소설의 '서두'와 '결미' 혹은 '배경'
과 '경계선'만을 언급했을 뿐, 이 소설의 '본문'이나 '주제'에 대해서는  언급
하지 않았다. 사실, 위에서 다룬 내용이 정말  이 소설의 '주제'이자 '본문'이
라고 할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 소설의 중심 줄기(주요한 줄거리)는 원승지가  원한을 갚을 뜻을 세우고,
이로 인해 무예를 배워 원수를 갚는 과정인데, 그의 원수는 바로 만청의 황태
극과 명나라 황제 숭정이므로, 그는 '국가적 원한'과 '개인의 원한'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인물이 되며, 또 이자성과 그가 이끄는 틈왕의 군대는 바로 명나
라에 반대하고 또 만청의 침략에 반대하는 성격을 띄고 있었으므로,  원승지가
이자성의 군대를 지지하는 것은 바로 시대의 대세에 순응하는 것이었고,  천하
백성들의 뜻에 합당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원수와 원한을 갚는 가장 좋은 지름
길이기도 했던 것이다.
  일반적인 무협 소설이 <무예를 배워 원수를 갚는 것>과는 다르다. 원승지가
복수하는 과정은 역사의 발전 과정과 잘  결합되어졌던 것이다. <<벽혈검>>의
중심 줄거리는 바로 원승지와 그의 문파가, 틈왕의 군대를 재정적으로  도우면
서 복수해 나가고 강산을 되찾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연히 <<벽혈검>> 역시 원승지가 강호를 떠도는 사건과 문파 내의  갈등으
로 생기는 또 다른 부차적인 주제를 깔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러한 부차적인 주제는 그저 은근하게 틈왕의 군대를 재정적으로 돕는 것과 결
합되어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원승지가 안소혜(安小彗)를 도와 하청청에 의해 빼앗겼던 이천 냥
의 황금을 되찾는 장면은 그저  일반적인 강호의 '흑도(黑道)'와 '백도(白道)'
간의 싸움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 황금은 바로 틈왕 군대의 군수 물자
였다는 것처럼 말이다. 또 원승지와 하청청이 '보물을 빼앗아 숨기는'  장면은
일반적으로 강호에서 벌어지는 수작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보물  또한
바로 틈왕 군대의 군수 물자였다.
  소설 속의 선도파(仙都派) 제자 민자화(閔子華)가  강호의 친구들을 불러 모
아 금룡방주(金龍幇主) 초공례(焦公禮)에게  복수해 달라고  하는 장면과 같은
싸움도, 겉보기에는 그저 순수한 강호의 사건 같지만, 실제로는 만청의 첩자인
'태백삼영(太白三英)'의 교사를 받아 일어나게 된 사건이었다.
  원승지 등과 '오독교(五毒敎)' 간의 복잡한 갈등과 싸움 역시 엄밀하게 따져
말하자면 운남 귀주 일대의 오독교가 줄곧 태감인  조화순(曹化淳)의 요청으로
목숨을 바쳐 가면서 조정을 위해 일하던 반역적인 세력이었기 때문이었다.  당
시의 강호 사람들은 많든지 적든지, 드러내 놓든지  암암리에 하든지, 혹은 직
접적으로 하든지 간접적으로 하든지, 모두 당시의 만청(滿靑)과 명(明), 틈왕(闖
王)이라는 이 세가지의 정치적, 군사적 세력과 연관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인 원승지 역시 이 세가지와 보통이 아닌 관계를 맺고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 밖에 살펴 보아야 할 것으로, '금사랑군'  하설의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소설 속에서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그가 사랑했던  온의
(溫儀)와 딸 하청청, 그리고 전수자인 동시에 사위인 원승지와, 그를 위해 엄청
난 고난을 겪어 결국 외모와 성격이 변하게 된 오독교의  하홍약(何紅葯) 등을
통해, 그의 모습이 어느 정도 완전하고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사람은 정치와는 무관한, 순수한 강호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
역시 강산이나 난세와는 상관이 없는 그저 강호에서 있는 순수한 은원과 애정
에 얽힌 이야기처럼 보일 뿐이다. 복수와 애정, 탐욕(재물에 대한), 이 세 가지
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그는 복수를 위해 모든 힘과 수단을 다해 오독교에서 이 교의 '진교삼보(鎭
敎三寶)'인 금사검(金蛇劍), 금사추(金蛇錐), 중보도(重寶圖)를  훔쳐 강남의 온
씨 집안에 복수를 하러 가서 사십여 명을 죽이고 부녀자들을 강간하다가 온씨
집안의 딸인 온의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어 결국 '애정' 때문에 '복수'를 포기
하고 만다.
  그는 더이상 온씨 집안에 복수를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또다시 재물에 대해
탐욕을 부리다가, 원한을 기억하고 있던 온씨 집안의 다섯 노인에 의해 함정에
빠져, 결국 손과 발의 경맥을 끊기고 무공이 소실되어 죽기 직전에 이르나, 다
행히 옛날 애인이었던 하홍약에 의해 목숨을 건지게 된다. 하지만 하홍약은 또
질투 때문에 한을 품고, 정 때문에 원한을 품게 되어, 결국  화산(華山)의 산동
굴 속에서 죽어 버리고 만다.
  이것은 정말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면서도 슬프고 비참한 이야기이다.
하설의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강호의 인물로, 반쯤은 정의로운  구석도 있고,
나머지 반은 사악한 인물이었다. 동정 받을만하나 안타깝게도 그는 선을  많이
행하는 대신 악한 일을 많이 저질렀다. 그의  원한은 동정받을 만하지만, 그가
복수하는 방식은 너무나 악랄하고 악독했던 것이다.
  온의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감동적이면서 눈물겹지만, 하홍약에 대해서는 양심
을 저버리는 행동을 했다. 그의 일생은 무의미한 생애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
다. 전반부는 복수 때문에 비인간적인 생활을 했고,  후반부는 보물 때문에 비
인간적인 보복을 당했으며, 중반부에는 애정의  부드러움은 거의 느끼지 못하
고, 그의 인성에는 빛이 보이지 않아 아주 암담하고 참혹한 시간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보기에는 기세가 장렬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주 참담한 지경이었
던 것이다.
  이러한 전형적인 강호인의 생애는 실제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또한 바로 이러한 것이야말로 <강호에 살면 제 몸도 마음대로 못한다>는 강호
사람들의 바꿀 수 없는 운명이요, 생활 방식인 것이다.
  소설 <<벽혈검>>은 세가지 정치적 세력에 대해 심각한 비판과 부정적인  태
도를 보이는 것 외에도, 강호인들의 생애에 대해서도 독특한 비판과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하설의의 인생의 운명과 그 비극은 그 중에서도 돌출된
하나의 예일 뿐이며, 명문 정파인 화산파(華山派) 제자 귀신수(歸辛樹) 부부나,
힘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고 교만 방자하기만 한 그  문파 사람들도 아주 강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명문(名門)'이 이러한  실정이니, '비명문(非名門)'은
어떠하겠는가.
  언뜻 보기에, 후대 인물들의 인연이 서로 연관되는 것 이외에는 <<벽혈검>>
의 '주된 줄거리'와 '부차적인 줄거리'는 조금의  연관도 없이 각각 독립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더욱 깊이 들어가 보면, 이 주된 줄거리
와 그 부차적인 줄거리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주된 줄
거리와 부차적인 줄거리가, 강호(江湖)와 강산(江山)이 서로  상호 보충되는 하
나의 완정한 문화권 속에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이 상호 보충적인 문화권은 주인공 원승지와 이자성 등이 중개
자 역할을 맡아 형성되고 있다. 원승지는  '강호의 인물'이지만, '강산의 대들
보'의 후예이며, 또한 그는 책 속에서 줄곧 부친의 원수를 갚는 길로 나아가고
(이것이 강호의 인물과 강호에서 보내는 생애의  일반적인 형식)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주관적인 의도를 살펴 보든, 객관적인 효과 방면
을 살펴 보든지 간에, 시종일관 이자성이  <강산을 차지하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이자성은 강호의 호걸 출신으로,  원래는 부자들을 약탈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하늘을 대신하여 의협심을 발휘하는 강호의 협객이었
는데, 이 하늘을 대신하여 의협심을 발휘하는 행동이 고양되어, 쇠락하고 부패
한 명나라의 '대도(大道)'에  반항하게 되자, 이자성은  저절로 '대도(大盜)'가
되어버린다.
  옛 사람들의 말에 <대구(帶鉤)를 훔친 자는  좀도둑으로 사형되지만, 나라를
훔친 자는 귀족으로 부귀 영화를 누린다.>는 말이 있다.  그는 결국 왕의 자리
에까지 오르게 되어 <대순황제(大順皇帝)>의 칭호를 갖게 되고,  그 이후 황궁
에서 물러나면서부터는 또다시 강호의 <비적(草寇)>이라는 신분을 갖게 된다.
  이렇게 상호 보완적인 문화권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른 정도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항하고 추구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또한 그 자신의 불행한 역
사적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불행한 운명은 바로  이렇게 상호 보완적인 문화권에  의해 <결정되어지
는> 것이기도 하다. 강호의 인물이든, 강산의 인물이든 모두가 그러하다. 그들
은 역사를 창조했지만, 근본적인 의의를 따져 보면, 역사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강호의 재야 인사이든, 강산의 대들보이든, 무림계의  협객
이든, 국가의 왕후 장상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말이다. 간악하거나, 악독하거나,
선하거나, 자비로운 것에는 당연히 구체적인 분류가 있듯이, 장수, 재상,  협객,
도적 역시 각각 구별되기는 하지만, 그들의 행동이나 말이 각각  천차만별이라
고 해도, 그 근본적인 운명과 그 인생의 궤도는 이 범위에 의해 똑같은 불행의
시대와 불행한 문화권으로 묶여지게 된다.
  다시 말해서, 강호의 인물과 강산의 인물은 모두가 인물이요, 모두가 중국인
이며, 모두가 중국 고대의 사람들이다. 그 인성의  약점과 비극은 절대로 강호
혹은 강산이라는 차이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우리가 볼 수 있
는 차이점은 그저 그 표현 형식이 다르다는 것 밖에 없다. 탐욕과 권세욕이라
는 차이 말이다. 금은 재화에 대한 탐욕과, 권세와 왕위에 대한 탐욕은 똑같은
'탐욕'이요, 똑같은 인성의 '본능'이며, 이것 때문에  인생의 '비극'이 수없이
많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소설 속의 하설의는 복수, 애정, 탐욕으로 인해 운명을 거스르다가 실패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 소설 속의 이자성(그와  비슷한 사람들까지 포함하여)은 봉
기(어떤 의미로는 봉기 역시 '복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위,  권력 장악
으로 인해 운명을 거스르다가 실패하는 비극을 겪는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아
무런 연관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성의 본능적인 욕심이 서로 다르
게 표현되었을 뿐이며, 인생의 비극이, 또 역사의  비극이 서로 다르게 표현된
것에 불과할 뿐이다.
  서양의 철학자 헤겔도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바로 이 비천한 탐
욕과 권력욕이야말로, 역사를  발전, 전진시키는 추동력이  된다.>고. 강호에서
보물을 빼앗으려고 다투는 것이 이러한 비극의 중요한 원인이며, 강산에서  권
력을 놓고 다투는 것이 이러한 정치적 비극의 기본적인 형식이 된다고 하겠다.
  우리들은 김용 소설에서 강호 사람들이 재물을  탐하는 것은 '권세'를 탐하
는 것과 같고, 강산 사람들이 권세를 탐하는 것은 '재물'을 탐하는 것과 본질
에 잇어서는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두가지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상호 보완적이면서 내재적인 인성의 범위를 형성하게 되며, 이 내재한
인성의 비극적인 상호 보완의 범위가 바로  외재적인 문화권의 핵심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탐욕과 권세욕은 역사  발전을 전진시켜 나가는 추동적인
근간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중국에서는 특히 중국의 봉건  왕조에서는
꼭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러한 탐욕과 권세욕은 정
말로 역사 발전을 전진시키는 원동력이었다기 보다는, 종종 인생과 사회, 역사
와 시대에 거대한 비극을 조성했을 뿐이었다. 그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바로
김용 소설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강호 사람들의  <재물에 대한 탐욕>은
결코 <노동과 창조>가 없이 그저 <보물을 찾아 빼앗으려고>만 했었으며, 마찬
가지로 강산의 사람들의 권력 다툼도 항상 <민주와 법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항상 <폭력과 음모>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 모든 것과 역사 발
전의 원동력은 무관하며, <역사 발전>에 있어서  도움을 준 것이 없었다고 할
것이다.
  이 <<벽혈검>>이 이러한 부정적인 결말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소설
결미 부분의, 주인공 원승지가 <부질없이 평안한 나라를 세울 꿈을 꾸며 나라
를 떠나는구나.>라는 사상이다.
  원승지가 해외로 도피하면서 이상적인 낙원을 만들어  보고자 꿈꾸게 된 것
은 이자성의 의군이 백성들을 잔악하게 살해했고  또 이자성이 이암을 핍박하
여 죽여,  <마음의 고통으로  의기소침해진> 탓이었으며,  <강산을 장악하고>
<제위에 오르는> 생활에 대해 가졌던 희망이 무너져 절망에 빠지게 되었기 때
문이었다. 어쩌면 '강호'에서의 삶에 대해서 실망과 회의를 느꼈기 때문일  수
도 있다.
  그가 보고 듣고 만나고 경험한  것은 전부 생각과는 달랐으며, 하설의  등의
운명으로 교훈을 삼자는 마음도  들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그가 <나라를 떠
나> <부질없이 평안한 나라를 세울 꿈을 꾸는> 것은 결국 현실성을 얻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원래 나라를 세우려는 큰 뜻을 지닌 인물
이 아니라 그저 명명백백한 강호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나라를
떠난 것은 '강산'과 '강호'에서 겪은  이중의 실망과 절망에 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벽혈검>>과 다른  모든 소설들이 차이가 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벽혈검>>이라는 이 소설이  심각하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
산'과 '강호' 생활,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이중의 실망으로 인해 느끼는 고통의
정도는 일반적인 '장렬한 기세'나 '호방함'이나  '생동적이고 곡절한' 맛과는
절대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것이다.
  다만, 원승지의 <해외로 도피하여> <이상적인 낙원을  세우고자 하는> 이러
한 사고 방식은 결국 실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최소한 우리는 <<수호전(水滸傳)>>의 이준(李俊)이라는 인물을 시작으로 봐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해외로의  도피>를 최후의 이상적인 귀결점으로
삼아 왔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이 과연 아름다운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재
가 되고 말 몽상인지는 정말 말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당연히 다시 반복
해서 말하자면, 원승지의 <나라를 떠나는>  이러한 생각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다 주는 생각임과 동시에, 이 책의 <난세의 정과  원한, 난세의 슬픔>이라
는 심각하고 비극적인 주제를  더더욱 심각하고 남김없이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책에서 원승지라는 이 인물에 대한 형상 묘사는 작가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성공적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소설 속의 여성들의 형상이 남자  주인
공에 비해 더욱 생동적이고 더욱 선명하다. 특히 원승지와 애정 문제로 얽혔던
소녀들의 형상이 더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어 소설 속에서 원승지와 하철수가 서로 대작하는 장면을 살펴 보도
록 하자.
 
            원승지는 그녀와 대작하며, 불빛 아래의 그녀를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녀의 눈은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어, 원승지는 머리
          가 어지러운 것을 느꼈다.
            '내가 알고 있는 여자 가운데 용모의 아름다움을 말하면 아
          구가 제일일 것이다. 소혜는 성실하고  진지하며, 원아는 호방
          하면서도 세심하다. 청청은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나에게 일편
          단심을 바치고 있다. 그런데 하철수는 용모는 아름답지만 독사
          와 같으며, 정말로 천하에서 큰 인물이면서도 기이하고 이상하
          고 완벽하다.'
 
  위의 문장에서 말하고 있는 몇몇 소녀의  형상은 상당히 선명하고 생동적이
어서,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그 중 하청청과 아구(阿九)라는  두 인
물의 형상이 더욱 정묘하고  심각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예를 들어 <강적을
떨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어렵다.(易寒强敵
膽, 難解女兒心)>(제8회)라는 회(回)의 시작 부분에서  보이는 하청청의 모습을
살펴 보자.
 
            청청이 화를 내며 말했다.
            "그토록 미련이 남아 이별이 괴로우면  어서 뒤쫓아가지 그
          래요?"
            원승지는 그제서야 그녀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눈치채
          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 큰 위험을 당한 적이 있었소. 그 때 그녀의
          어머니가 구해주셨소. 그 이후부터 서로 함께 놀며 자란..."
            청청은 더욱 화를 내며 계단을 향해  돌을 마구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그럼 결혼하기로 했겠군요? 아까  오행진(五行陣)을 쳐부술
          때 어째서 다른 무기를 쓰지 않고  하필이면 그녀의 옥비녀를
          썼나요? 내게는 비녀가 없는 줄 아셨나요?"
            그녀는 자기 머리를 지르고 있던 옥비녀를  뽑아 분질러 땅
          에 팽개치고 발로 짓밟았다. 원승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는 말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면서, 나하
          고 있을 때는 어째서 항상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거죠?"
            원승지는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언제 얼굴을 찌푸렸다고 그러오?"
            "그녀의 어머니라고 했나요? 좋아요! 원 오라버니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주고,  귀여워해주었다 이거죠.  난 불행하게도
          그런 어머니마저 없군요."
            어머니 얘기를 꺼내면서 그녀는 또 다시 울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하청청이다. 그녀는 이미 원승지를 깊게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
에, '사랑으로 생기는 질투심'을  품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  후에 원승지는
여자들을 만날 때면, 하청청이 그랬던 것과 똑같은 태도와 맞부딪히곤  하였지
만, 그는 정리(情理)에 어두웠기 때문에 결국 생사까지 거는 질투 섞인 원한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그저  '질투'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또 소녀들이 첫사랑을 느낄 때 <얻기 전에는 그것을 얻으려고 노심초사 하여>
<바람 소리만 나도 겁을 집어 먹고 크게 놀라는> 것같은 심리도 아니고, 그렇
다고 해서 <마음이 좁기 때문>도 아니었다.
  이것은 정말로 아주 복잡한 정신 상태와 품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미약하게나마 정신적 상태와 성격이 약간 뒤틀린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녀
는 사생아를 낳았기 때문에 남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던 동시에, 또  아름다운
미모를 지니고 있어서 사촌 오빠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민과 방종, 자기 비하와 교태, 좁은 마음과 열렬한 태도, 사랑에 빠지고는 또
의심만 하는 따위의 온갖 모순적 태도를 한 몸에 지니고 있었던 것이며, 이 때
문에 끝에 가서는 결국 생명을 잃게 된다.
  이것은 절대로 단순하게 '질투'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많은 의미를 함축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청청은 아주 복잡하면서도 또 선명하게, 사람들에
게 잊혀질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또 다른 사람으로는 숭정의 딸인  아구가 있다. 그녀는 원승지에 대해  깊은
사랑을 지니고 있었는데, 책에는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뚜렷한  인
상을 남기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그 어느 누구 보다도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아주 총명하고, 기개
도 뛰어나며, 온화하고 점잖으면서 귀족티가 났고,  한편으로는 아주 순박하고
천진난만한 소녀였다. 말못할 온갖 괴로움(나라는 망하고,  아버지는 자살했고,
또 아버지로 인해 한 팔이  잘리고, 유일하게 사랑했던 원승지는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고,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등등)을 겪은 후에 결국 삭발하고 출가
하여 비구니가 된다.
  그녀의 형상은 바로 이 <난세의 애정과  원한, 난세의 슬픔> 중에서 애정과
원한과 슬픔이 가장 잘 얽혀 있는  인물이다. 불쌍한 아구, 공주, 구난(九難)이
여! 왕실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불행하다 할 수 있는데,  난세를 만나 더
욱 깊은 슬픔을 맛보게 되었으니,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 것인가? 오
로지 머리를 깎고 구난(九難)이라는 비구니가  되는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그
누가 헤아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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