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중국영화관련

김용평론 1) - 백마소서풍

kcyland 2016. 1. 12.
반응형

   
   천령조(天鈴鳥)의 노래
               {백마소서풍(白馬嘯西風)}
  
   {백마소서풍}은 김용의 중편 무협 소설이다.  김용의 장편 대작들과 비교할  때
 이 중편 소설은 가작(佳作)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그 스케일이나 기
 세의 웅장함도 그렇고, 그 줄거리의 긴밀함이나  정묘함, 심원함과 변화를 따져도
 그렇고, 등장 인물의 성격의 풍부함과 선명함에 있어서도 뒤떨어진다. 또 그 주제
 의 함축적인 심오함과 풍부함, 그 서술 언어의 간결함이나 유려함을  따져 보아도
 그러하다. 이 {백마소서풍}은 어느 면을 살펴 보아도 최고작이라고 할  만한 점이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김용이  그려내는 어떠한 작품도, 설사  김용의 작품 세계
 안에서는 별로 대단할 것이 없는 작품이라 하더라도, 다른 작가의  작품들과 비교
 해 보면 그래도 훨씬 뛰어나다는 점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김용의 무협  소설 창
 작에 있어서의 오묘한 점은 그의 {천룡팔부}, {녹정기}, {사조영웅전}, {소오강호}
 및 {협객행} 등등의 최고  작품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약간 뒤떨어지는 수준의
 작품에서도, 다른 유명한 작가들의 유명한 작품보다 뛰어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무협 소설에서도 대가의 작품은 어디가 달라도 다른 것이다. 내공이  심후한 무
 예의 고수라면 꽃잎과 낙엽만 가지고도 손쉽게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법이다. 소
 설의 대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내공이 심후한 작가라면,  붓 가는대로 휘둘러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지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뛰어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
 는 것이다.
   {백마소서풍}은 바로 김용 김대협이  이렇게 붓 가는대로  별로 신경쓰지 않고
 써낸 작품이다.
   소설가에게 있어서 소위 내공이라는 것은,  세계와 인성에 대한 절실한  체험과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요, 인성과 역사에 대한 독특한 견해와 사상을  가리키는 것
 이다.
   만약 우리들이 {백마소서풍}을 하나의 무협 소설로 대하고 읽는다면, 만약 우리
 들이 무협 소설 속에서 긴장이나 자극, 혹은  곡절과 고민, 전기와 신화를 찾으려
 고 든다면, 언뜻 보기에 이 {백마소서풍}은  확실히 만족을 줄만한 작품이 못  될
 것이 틀림없다. 이 작품에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엄청난 재미가 있다고
 할 수도 없으며, 그러한 긴장이나 자극을  주지도 못하고, 다채롭거나 신기하지도
 않다. 한마디로 잘라 말하자면 왁자지껄한 맛이 없다고 하겠다. 만약 우리들이 일
 반적인 상식에 따라 무협 소설의 초식과 무예를 중심으로 이 소설을 본다면 이것
 이 과연 무협 소설인지 회의를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이 작품 속에는  무슨 무예
 라고 할 만한 것도 없으며, 진정한 협의는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그 속에
 등장하는 강호 인물들은 그저 연극 속의 자질구레한 단역과 비슷할  뿐이며, 주인
 공을 무대로 이끄는 역할 이외에는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책 속의 주인공인 이문수(李文秀)는 그저 곤경에 빠져 회교도들이 사는 변방 지
 역에서 살게 된 한족(漢族) 소녀에  불과하다. 원래 무공도 할 줄  몰랐고, 나중에
 기이한 인연으로 무공을 배우기는 하지만, 그녀는 절대로 이 무공에  의지하여 강
 호에 이름을 날리거나 위세를 떨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비록 마음
 속으로는 부모를 죽인 원수를 잊지 않고 있었지만, 자기가 원수에 의해 살해 당하
 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녀가 무예를 배운 진정한 목적은 바로 이  무공으로써 사
 랑하는 사람을 얻고, 그와 더불어 아주 평범하게 목축 생활을 해 나갈 수 있게 되
 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인물이 작품의  주인공이니, 독자들이 이 소설을
 무협 소설이 아니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비록 처음부터 끝
 까지 어렴풋이 강호 사람들이 보물을 빼앗기 위해 목숨을 건 도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는 있지만, 책에서는 세상의 인심이나, 어린 소년  소녀들, 춤추고
 술 마시고 방목하는 일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대부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이 모
 든 것들은, 긴장과 자극과 변화를 원하는 독자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평범하기 때
 문에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들이 그 무공의 변화에서 재미를 찾거나, 협객들의  긴장 속에
 함께 빠져 들고자 하지 않는다면, 평범하고 재미  없다고 화낼 이유가 없다. 만약
 우리들이 각도와 층차를 바꿔서 다시 이 {백마소서풍}을 읽어본다면, 이 소설이야
 말로 신선들이 사는 선경(仙境) 만큼이나 오묘한 맛이 깃들어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의 오묘함은 무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에 있다. 의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업보에 있다. 선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에 있다. 사건에 있는 것
 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  떠들썩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아함에 있다. 흥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감상(感傷)에 있다. 곡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원함에 있다.
 즉, 평범함 속에 다할 수 없는 운치가 가득 담겨 있다고 하겠다.
   이 소설의 주제는 무인(武人)들의 이야기에 있지 않고, 주인공인 이문수라는 여
 인의 감정에 있다. 그러므로 무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문수는 부모 백마(白馬)  이삼(李三)과 금은소검(金銀小劍) 삼낭자(三娘子)를  따
 라, 여량삼걸(呂梁三傑) 등 60여 명의 추격을 받으며  감량(甘凉)에서 회강(回疆)으
 로 도망쳐 오다가, 백마 이삼과 금은 소검 상관홍(上官紅)은  죽어 버리고, 이문수
 혼자 남아 회강의 카자흐 초원을 떠돌아  다니게 된다. 그러다가 혼자 살고  있는
 한인 노인에게 키워지게 되어, 이로부터 차츰  회강의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카자
 흐에서의 단순하고 누추하면서도 즐거운 목축 생활에 젖어간다. 또한 카자흐 제일
 의 용사인 소로극의 아들인 소보와는 나이도 비슷하여, 소꼽 친구로  함께 어울리
 면서 남모르는 연정이 싹트게 되고, 이로 인해 이문수는 애정이라는 그물 속에 갇
 혀 고민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백마소서풍}이라는 이 소설의 중심  줄거리가 된
 다.
   주의할 점은, 이 소설이 시작부터 끝까지 잔인하고 음산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
 기는 하지만, 그 가운데에  정에 얽힌 얘기들이 점철되어  있다는 점이다. 작품의
 서두 부분에서는 백마 이삼과 금은소검 삼낭자  상관홍 부부가 딸인 이문수를 데
 리고 여량삼걸의 끈질긴 추적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그저 고창고국(高昌古國)의 미궁의 보물지도 때문에 일어난 사건처럼 보
 인다. 강호 사람들은 재물을 보면 사람을 죽여서라도 그 보물을  빼앗으려고 한다
 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좀 더 깊은 면을 살펴 보면,  여량삼걸의 둘
 째인 사중준과 백마 이삼의 아내인 상관홍 간에는 옛날 애정 문제가 얽혀 있었고,
 이 때문에 사중준은 이삼에 대한 질투와  원한을 가득 가지고 있어서, 결국  죽여
 없애고자 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책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사중준과 백마 이삼의 아내 상관홍은 원래 동문의 사형제 사이였다.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함께 무예를 배웠다. 사중준은  마음속으로 줄곧 이 아름답고  성품이
 온화한 사매를 사랑해 왔고, 사부 역시 그들의 관계를 어느정도  묵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문 사형제들은 그들을 약혼한 사이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홍이
 백마 이삼을 만나 첫눈에 서로에게 반해  집안에서 둘의 결혼을 반대했는데도 상
 관홍은 그를 따라 도망가고 말았다. 사중준은  상심한 나머지 큰 병을 앓게  되었
 고, 이때부터 그의 성격은 변하고 말았다. 그는 끝내 사매에 대한 애정을 잊지 못
 해 지금까지도 결혼하지 않고 있었다.
  
   헤어진 지 3년만에, 원수지간인 이 세 사람이 감량  도상에서 만나, 한 장의 보
 물 지도를 놓고 싸우게  되었던 것이다. 사중준은 질투와  원한이 교차되어, 더욱
 악랄한 출수를 쓰게 되어, 이삼은 등에  사중준이 쏜 치명적인 화살을 맞고  죽어
 버린다. 이삼이 죽자 사중준은 사매인 상관홍이 다시 자기에게 되돌아 올 것을 기
 대했지만, 결국 상관홍에게 속아 두 명이 함께  금은쌍검에 찔려 죽고 만다. 상관
 홍 덕분에 이문수는 혼자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리하여  {백마소서풍}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된다. 정에  얽힌 업보야말로 이 소설이  시작되고
 진행되어 나가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소설의 결미 부분에 가면, 고창고국의 미궁 안에서 귀신으로  가장하여 말
 과 사람을 죽이고 해했던 화휘(카자흐 사람인 와이랍제) 역시 애정으로 인한 실망
 때문에 이처럼 잔인하고 악덕 무도하게 되었던 것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계 할아
 버지로 변장하여 이문수를 길러 주었던 마가준 역시 정 때문에 죽게 된다.
  
   마가준이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이문수는  마음속으로 분명
 히 그 대답을 알고 있었다. 마가준은 아주  자신의 사부를 두려워 했었지만, 중원
 으로 도망가지 않고 그녀를 따라 미궁에까지 들어왔다. 그가 끝까지  노인으로 변
 장하고 있었더라면 와이랍제가 그를 알아 볼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
 국 출수하여 자기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사부와 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이 모든 것
 은 전부 그녀를 위해서였다! 이 10년 동안, 그는  할아버지처럼 자신을 돌보아 주
 었지만 사실 그는 건장한 젊은이였다. 세상의 어떤 친 할아버지가  자기 손녀에게
 이처럼 잘해 줄 수 있을까?
  
   이문수는 어쩌면 잘 모를지도 몰랐다. 그녀의 모든 감정은 전부 소보 한 사람에
 게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마가준 자신도 알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는 마치 자기 몸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죽음의 길로 걸어 들어 갔으니, 그것
 은 바로 정을 주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정이라는 것은  할아버지가 손녀에
 게 주는 정의 모습으로 표출되었었지만, 마가준은 결코 그녀의 할아버지가 아니었
 고, 심지어는 이문수의 할아버지 뻘이라고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는 나이가 약간 차이 나는 동문 사형제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마가준은 정을 억
 제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사랑하는 이문수의 목숨을 구해  냈다. 그리
 고 이문수가 목숨을 걸면서까지 사부인 화휘(와이랍제)의 말을 듣지 않고 남아 있
 었던 까닭은 바로 그녀가 한 말과 생각 때문이었다.
  
   이문수가 조용히 말했다.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사랑하는 여인을 얻지  못하자 그녀를 죽여버리셨죠. 하
 지만, 전 사랑하는 사람을 얻을  수 없다 해도, 그가  살해당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어요."
  
   바로 이러한 까닭 때문이었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발전시키고 또  이문수로 하
 여금 모든 것을 저버리고 미궁에 뛰어 들도록 만들었던  그 원동력은 바로 이 정
 이라는 한 글자에 있다고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문수와 와이랍제가 사
 랑하는 사람을 얻지 못했을 때의 태도와 그 인품의 고하(高下)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마가준은 이문수 때문에 미궁에
 들어 왔고, 이문수는 소보 때문에 들어 왔으며, 소보는 아만 때문에 들어 왔고, 아
 만은 와이랍제에 의해 미궁에 붙잡혀 오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  와이랍제가 아만
 을 붙잡아 온 까닭은 바로 아만의  어머니인 아려선이 옛날 와이랍제가 사랑했던
 여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 속의  미궁은 물질적인 의미에서의 미궁일  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감정이 얽히고 섥힌 그런 미궁이기도 하다. 소설의 실마리가 이
 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곡절하고 기이하고 환상적으로 펼쳐지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모든 것은 전부 정 하나로 귀결되어 진다.
   정 때문에 살인을 하기도 하고, 정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도 하고, 정 때
 문에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소설 속에서는 정  때문에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구
 해진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하는 그 장면을 작가는 아주 자세하고도 심각하게 다음
 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와이랍제가 말했다.
   "나는 네가 영원히 이 곳에서 나와  함께 있도록 만들 테다. 영원히 날  떠나지
 못하게..."
   그는 말을 하면서 천천히 오른손을 쳐들었다. 엄지 손가락과 둘째  손가락 사이
 에 두 개의 독침이 쥐어져 있었다.
   (이 독침 두 개가 너를 가볍게 한 번 찌르기만 해도 넌 영원히 이 미궁  속에서
 나와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는 나직히 말했다.
   "수아, 너는 아름답고 착한 아이이다. 영원히  내 곁에 있어다오. 난 일생  동안
 너무나 적막하고 고독했었다. 어느 누구도 날 상관하지 않았었지. 수아, 넌 정말로
 착하고 좋은 아이다."
   두 개의 독침이 천천히 이문수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으나, 어두웠기  때문에 그
 녀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와이랍제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손에 힘이 없으니, 천천히 찌르는 수밖에 없다. 빨리 출수했다가 그녀가 피
 해버리면, 난 더 이상 그녀를 찌를 힘이 없어서 낭패하고 말 것이다."
   독침이 점차 그녀의 뺨을 향해 다가왔다. 두 치, 한 치.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문수는 독침이 불과 몇 치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조금도 모르는 채 말
 했다.
   "사부님, 아만의 어머니는 아주 아름다웠었나요?"
   와이랍제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아만의 어머니 아려선..."
   갑자기 전신의 힘이 쭉 빠져버렸고, 들어 올렸던 오른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
 제 그는 다시는 오른손을 들 힘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얼마나 위험한 순간인가 하늘의 뜻처럼  심오하고 오묘하지 않은가? 생명을
 잃을 위기일발의 순간에, 이문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와이랍제가 그토록 사랑했다
 던 아려선에 대해 말했고, 그 덕분에 와이랍제의 마지막 숨이 끊어져 그녀는 목숨
 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정이란 무엇이길래 이처럼  기이하단 말인가. 김용은
 아무런 의도 없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감상해 보면,
 이것이 바로 대가(대가)의 솜씨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백마소서풍}은 무가 중
 심이 아니라 정이 중심이며, 정에 따라 지어진 작품이라는 얘기가 빈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얘기하자면, {백마소서풍}은 또한 협의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업보를 묘사하고 있다 하겠다. 이 업보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
 로 정인 것이다. 즉 정에 따른 업보를 말한다.
   <정이 있으면 모두 화근(업보)이 된다>는 말은 원래 불가에서 쓰는 말이다. <사
 랑하는 사람을 떠나게 되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게 된다>는 말도  불경에 나오는
 말이다. 어쩌면 김용이 이 불경을  읽고, 또 부처를 믿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책 속에는 대부분이 원한 없는 사람 없고, 정이 있어서 화근이  되는 사건들
 을 많이 다루고 있다. {백마소서풍}은  더욱 더 그러하다. 하지만, 김용의  묘사가
 전부 정에 얽힌 업보를 얘기하고 있다 해서, 그것이 옛 것을 답습하여  현실에 적
 응을 못하거나 혹은 기계적으로 남의 것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며, 불
 가의 경전을 연역적으로 해석하여 글(文) 속에 도(道)를 담아 내고 있다는 점이 바
 로 우리가 주의해 볼 만한 가치를 지니는 점이라 하겠다. 반대로, 김용의 묘사 속
 에는 아름답고 생동적이면서 기묘함이 가득한 인간 세계와, 이 세계의  인생이 그
 려지고 있다. 김용이 묘사하는 정에 얽힌 사건들은 복잡하게 변화되어, 인간의 기
 쁨과 슬픔, 만남과 헤어짐의 감정을 더할 나위 없이 생동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
 다. 심각하면서도 생동감있고, 슬프고 비참하면서도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간단하
 면서도 풍부하고 심후한 것이 바로 김용 소설을 일관하고 있는  오묘함이며, 보통
 사람들로서는 흉내내기도 어려운 점이라 하겠다.
   보통 사람들이 정을 묘사하는 경우에는, 기껏해야 아름다운 미녀 영웅들을 그려
 내거나, 혹은 첫눈에 누군가에 반해서 온갖  시련과 고초를 겪은 후 결국  원하는
 대로 함께 행복한 삶을 영위해 나가는 이야기를 쓴다거나, 혹은 오랫동안 서로 의
 지하다가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결국 헤어지고 마는 등등의 이야기를  쓸 뿐이다.
 다른 사람들의 얘기와 중복되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는
 데, 자기 자신이 했던 이야기와 중복되지 않게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작업이라
 하겠다.
   김용이 정에 대해 묘사할 때는, 비록 대부분이 정이 있으면 화근이 된다는 범주
 를 벗어나지 못하고, 또 거의가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볼
 때 그에게도 세가지 고충이 있었으니, 우선 자기의 창작품이 다른  사람들의 것과
 중복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요, 두번째는 자기의 다른 작품들과  중복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세번째는 동일한 책 속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각각 중복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 고충을 극복한 끝에  김용의
 소설이 독특한 풍격을 지닌 걸작품이 되었다는  점은 더이상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김용을 무협 소설계의 대종사(大宗師)이자,  정을 묘사하는 명수라
 고 일컫는 것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이 {백마소서풍}에서도 김용의 탁월함은 여실히 드러난다. 이 소설의 서두, 본
 문, 결미 부분의 세가지 이야기는 내용이 대개 일치한다. 즉, 사중준과 상관홍, 와
 이랍제와 아려선, 이문수와 소보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얻지 못하는  내용들이
 다. 세 사람은 애정 문제 속에서 실망을 겪게  되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얻지
 못하고, 다른 사람은 내가 좋다고 야단이지만, 내가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이 소
 설의 공통적인 주제를 형성하게 된다. 바꿔 말하자면,  <만약 내가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라고도 말할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중준, 와이랍제,  이문수, 이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사중준은 큰 병을 앓고 난 뒤, 성격이 변하여 여량삼걸
 가운데 일인이 된다. 십 년 후, 백마 이삼 부부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가 선
 택한 것은 남편을 죽이고 그 부인을 되찾자는 것이었다.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
 사하고 있다.
  
   이삼은 결국 사막에서 목숨을 잃었다. 사중준은 말을 타고 달려  오다가 상관홍
 이 대사막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모습을 보자 양심에 가책을 받게 되었다.
   (내가 그녀의 남편을 죽였으니 앞으로 일생 동안 그녀를 잘 보살펴 주어야지.)
   사막의 서풍이 불어와 그녀의 옷자락이 나부끼고 있었다.  십 년 전, 사부가 무
 예를 가르쳐 주던 그 곳에서 보았던 그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상관홍의 무기
 는 한 쌍의 비수였는데, 그 중 한 자루는 금자루로 되어 있고, 또 한 자루는 은자
 루로 되어 있어서, 강호에서는 그녀를 금은소검 삼낭자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때
 그녀는 손에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고, 얼굴에는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띄고 있었
 다.
    사중준은 갑자기 사랑스런 마음이 불길처럼 타올라 가슴이 울렁거리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말에서 뛰어 내리며 불렀다.
   "사매!"
   상관홍이 말했다.
   "이삼은 죽었어요!"
   사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매, 우리가 헤어진 십 년...난 매일 그대를 생각했었소."
   상관홍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이에요? 저를 속이는 게 아니겠죠?"
   사중준의 가슴이 뛰었다. 저 미소와 교태! 십 년 전의 모습과 똑같지 않은가?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매, 이제부터 나와 함께 있도록 합시다. 당신이 편히  살 수 있도록 내가 잘
 보살펴 주겠소."
   상관홍의 눈에 갑자기 기이한 빛이 번뜩였다. 그녀는 큰소리로 말했다.
   "사형, 당신은 정말 저에게 잘대해 주시는군요!"
   상관홍이 그의 품안에 쓰러졌다. 사중준은 크게  기뻐 두 팔을 벌려 그녀를  꽉
 껴안았다. 곽원룡과 진달해는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둘째가 십 년 동안이나 그녀를 못 잊어 괴로워하더니,  오늘 결국 소원을 이루
 는구나.)
   사중준은 그녀의 체취를 맡으며 마음이  황홀해졌다. 상관홍이 두 팔로  자신을
 꽉 껴안는 것을 느끼며 황홀함에 젖어 있는 순간, 갑자기 배에 극심한  통증이 느
 껴졌다. 날카로운 것에 찔린 것이었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있는 힘을 다해 그녀
 를 밀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상관홍이 두 팔로 꽉 껴안고 죽을 힘을 다해 놓지 않
 아, 급기야 두 사람은 함께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렇게 애정을 얻지 못해, 원수 사이가 되어 버린 동문 사형제는 함께  죽고 말
 았다. 정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사건이라 하겠다. 상관홍은
 죽은 남편을 따라 자결하는 동시에 남편을 죽인 원수를 갚고자  결심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깊이 사랑했던 사형 사중준을  죽여버린 것은 약간 지나친 일이라
 하겠다. 사중준이 그처럼 악랄하고 잔인하게 정적(情敵)인 이삼을 죽여 자신의 행
 복을 찾으려 했으니, 물론 의롭지 못한 인물임이 분명하지만, 그는 현재에도 과거
 에도 여전히 상관홍에 대해 순정적인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 사랑에서 헤어 나오
 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맹목적으로 자기의 생명을 잃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어쩌
 면 사랑이란 원래 이처럼  맹목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미칠  듯이 사랑에 빠지면,
 이성을 잃게 되어 눈이 머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중준은 기
 쁨과 슬픔, 위로와 원한이 뒤섞여 결국에는 선과  악, 정과 사가 확실히 구분되지
 않는 인물이 되었다. 이것을 하나의 선택이다. 그가  그 선택에 대해 후회를 했을
 지는 알 수 없다. 그를 회생시켜 다시 선택하게 하면 어떤 선택을  내릴는지 우리
 가 말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정이란 화근이  되고, 사랑 때문에 결국 죽게 되
 니, 의도적으로든 비의도적으로든 항상 사람을 미망과 비애에 빠지게 한다.
   그와는 다르게, 와이랍제가 아려선의 사랑을 얻지 못했을 때, 그는 아려선이 사
 랑하는 차이고를 죽여버릴 생각을 했다. 이 점은 사중준과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결국 차이고에게 패배하고, 또 동족들에게서  멸시까지 받게 되자 명예가  실추된
 채 부족에서 쫓겨나 중원 지방을 떠돌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그는 마음속에 분노와 원한이 쌓여 갔고,  성격이 바뀌게 되어 <정에 의한 악마>
 가 되고 말았다. 중원에서 일신상의 무공과 음독한 기술을 배운 뒤, 음독함이야말
 로 그의 본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인데, 다시 동족들이 사는 부락으로  돌아와
 사랑하던 아려선을 독살하고, 심지어는 동족 전체를  몰살시킬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제자인 마가준이 그의 행동을 보다 못해 독침 세개를 그에게 찔러, 결국
 그는 산동굴에서 20년 동안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채 숨어 지내다가, 요행히 이문
 수를 만나 독침을 제거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최후에 제자인 마가준을 죽였을 뿐
 만 아니라, 심지어는 이문수까지 죽이려고 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사
 랑에는 조금의 이성도 없었을 뿐 아니라, 인성조차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정
 도 깊고, 정에 의해 생긴 사악함도 깊었다. 업보가 심했고, 업보로 생긴 장애는 더
 더욱 심했다! 정 때문에 원한이 생기고, 사랑 때문에  원망이 생겼기 때문에 인간
 인 그가 악마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사랑은 어쩌면 동정받을 만한 부분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의 경력은 어쩌면 연민받을 만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욕심과 그의 행동은 절대로 용서되거나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문수까지 죽이려고 했던 것은, 그의 애정이 이미 화근이 되고, 사람이
 이미 악마가 되어, 인정(人情)을 상실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이문수의 선택은 사중준과 와이랍제와는 또 다르다. 와이랍제
 의 선택과는 완전히 상반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은 전부  본심에서 나
 온 주동적인 것은 아니고, 절반은 어찌할 수  없는 자제심에 의한 것이요, 나머지
 절반은 진정한 사랑과 초월에 의한 것이다. 그 안에는 <어찌할 수 없이 꽃은 떨어
 져만 가네>라는 시구와 같은 담담한 슬픔과, 설명할 수 없고 또 설명할 필요도 없
 는 깊은 감상이 가득 배어 있다.
   이것은 아주 괴로운 심리 상태의 한 과정이다. 동시에 사람들을 감상에 젖게 만
 드는 인생의 한 역정이기도 한다. 바로 이렇게 사람들로 하여금 감상에 젖게 만드
 는 인생 역정과, 뭐라 말하기 힘든 설움으로 가득 찬 심리 상태의 과정이  이 {백
 마소서풍}의 중심과 운치를 형성하고 있다.
   이문수와 소보는 원래 소꼽 친구로 자라는 중에 서로 애정이  싹텄던 사이이다.
 흉악한 이리가 이문수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았을 때, 소보는 목숨을 걸고 싸워 그
 이리를 죽이고, 이리 가죽을 이문수에게 선물로 주었었다.
   카자흐의 규율에 따르면, 남자가 최초로 잡은 동물을 아가씨에게 선물로 준다는
 건 미래를 약속하는 사랑의 고백을 의미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소보의 어머니와
 형이 모두 한인 강도인 진달해 등에  의해 살해되었기 때문에, 진달해 등은  바로
 이문수의 부모를 죽인 원수이기도 한데,  이로 인해 영웅적이고 용감하면서  거친
 소로극은 모든 한인들을 싫어하게 되었고, 한인 중에는 좋은 사람이  없다는 편견
 을 갖게 되어, 자기 아들이 한인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이리와 싸웠고, 그 가
 죽을 한인 여자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화가 나서 소보를 단번에
 죽여 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문수는 이 때 비록 나이가 어려 남녀 사이의  감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
 었지만, 자기의 감정이 풀기 어려운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은 어렴풋하게나
 마 깨닫고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내가 이 이리 가죽을 받는다면, 소보는  자기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카자흐 부족의 여자라야,  그들과 같은 동족의 여자라야  이 이리 가죽을
 받을 수 있다. 카자흐 부족의 여자애들 중에서 누가 가장 아름다울까? 나 역시 이
 이리 가죽이 대단히 마음에 든다. 소보가  생명을 걸고 때려 잡은 이리의  가죽이
 고, 소보가 나에게 준 것이니까 더욱 소중하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받는다면 그
 의 아버지는 그를 때려 죽이고 말 것이다. 그러니 어찌하면 좋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 결과 이문수는 이  이리 가죽
 을 몰래 카자흐 족의 여자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인 아만의 집 앞에 가져
 다 놓는다. 말하자면 소보와 아만이 서로 사랑하게 된 것은 바로 소보를  깊이 사
 랑하는 이문수의 덕분이었다. 이로써 소보의 목숨을 구하긴 했지만, (어쩌면  소보
 의 아버지가 정말로 소보를 때려 죽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보와 이문
 수가 교제하는 것만큼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자신의 애정을 가
 슴속 깊은 곳에 묻어 둘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감동적인 한
 장면이다. 뿐만 아니라, 소보가 이 일에 대해 물어보러 그녀를 찾아 왔을 때, 그녀
 는 <난 이제부터는 널 만나지 않겠어.>라고  말하고는 문 뒤에서 얼굴을 묻고 울
 음을 터뜨린다. 이 때의 이문수가 정말로 애정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
 라고 말할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진정으로 사심 없고 순수한 애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
 찌 되었든, 이 날 이후부터 소보는 더이상 이문수를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
 히 같은 동족의 미녀인 아만을 사랑하게 된다.
    언뜻 보기에, 이문수와 소보 사이의 감정적 요소가 건강하게  발전하지 못했던
 것은, 소로극의 참견과 한인에 대한 소로극의 뿌리 깊은 완고한  편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소로극의 아내와 큰아들이 모두 한인 강도에 의해  살해 되었
 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강도는 바로 이문수의 부모를  살해한 원수이기도 했다.
 이것은 정말 풀기 어렵게 꼬인 관계라 하겠다. 하지만 일은 뜻밖의 방향으로 발전
 되어 간다. 만약 소로극의 고집과 편견만으로 두 명의 어린 소꼽 친구들의 애정이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유감스럽고  한탄할 만한 일이며, 혹
 시 이 한 쌍의 연인이 다른 경로를 통해  고난을 극복했다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가능성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감정을 좀 더  깊이 파고들어가 보면,
 뜻밖에도 이문수에 대한 소보의 감정은 소보에 대한 이문수의 감정처럼 애정으로
 발달된 것이 아니라, 그저  소꼽 친구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소보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아름다운 아만이었다. 소보의 마음속의 이문수는 영원히 기억될 만한
 소꼽 친구였을 뿐, 절대로 죽어도 변치  않은 남녀 사이의 그런 감정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을 감상과 비탄에 젖게  만드는 일이라 하겠다. 책에
 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문수가 말했다.
   "만약 그 무덤의 문이 열린다면 당신은 뛰어들 것입니까?"
   소보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옛날 이야기 속에서나 나오는 일이지.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있
 나?"
   이문수가 말했다.
   "만약 그 아가씨가 정말 그대를 아주 그리워해서, 밤낮 그대만을 기다리다가 죽
 었기 때문에 정말 무덤 문이 열리게 된다면, 무덤 안에 들어가 영원히  그녀와 함
 께 있을 수 잇나요?"
   소보가 탄식하며 말했다.
   "아니오. 그 어린 아가씨는 단지 어릴적의  좋은 친구였을 뿐이오. 나는 한평생
 아만과 함께 살 것이오."
   말을 하면서 아만의 두 손을 꽉 잡는  것이었다. 이문수는 마음이 아파왔다. 갑
 자기 먼 곳에서 천령조 한 마리가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주  감동적이면서 처량하
 고 슬프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천령조는 끊임없이 울고 있었다. 추운 겨울 밤에는 천령조가 울지 않는 법인데,
 무슨 마음 아픈 일이 있기에 울고 있는 것일까?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이문수가 처음으로 천령조의 노랫 소리를 들었을  때, 계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떤 카자흐 사람이 말하더구나. 초원에서 가장 아름답고 노래를 잘 부르던 소
 녀가 죽어서 새로 변햇다고.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자 상심
 한 그녀는 죽고 말았단다."
   이문수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그녀가 가장 아름답고 노래도 잘 불렀다면 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이문수는 근본적으로 이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대부분의 독자
 들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이문수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  이야기 속에
 담긴 고통과 비원(悲願)을 이해하게 되었다.  {백마소서풍}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
 들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이문수 역시 똑같은 비극적인 상황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녀가 깊이 사랑했던 사람은  다른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이문수는 뜻밖에도 그 천령조의 운명과 거의  비슷한 처지
 였다.
   이문수의 사랑은 절망적인 사랑이 되었고 감상적인 사랑이 되었다. 절망적인 슬
 픔 속에서 이문수도 무예를 배워 소보를  빼앗을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런 기회가 와서 소보의 연인 아만이 노예가  되어 그의 곁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자, 그녀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치대로 따지자면 이문수는 숨거나
 도망갔어야 옳을 테지만, 이문수는 아만과 소보가 미궁 속에서 어려운  처지에 빠
 지자 뜻밖에도 용감히 나서서 아만을 구해 오고 소보 등의 사람들을 구해냈던 것
 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모든 것은 사랑을  위해서였다. 모든 것이 그저 사랑
 을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사중준, 와이랍제,  그리고 이문
 수의 서로 다른 선택 속에서 사랑의 여러 가지 서로 다른 표현방식과,  정이 화근
 으로 바뀐 후에 보이는 인품의 고하와 성격의 차이, 그리고 인성의 기이함과 인정
 의 감상 및 승화를 볼 수 있다.
   {백마소서풍} 속에 보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죽음을 택하는 것 에도 여
 러 가지 성격 차이와 여러 가지 이유와 여러 가지 함축적인 경계가  엿보인다. 사
 중준이 상관홍과 함께은 것은 뜻밖의 일이었으며, 스스로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마가준이 이문수를 위해 죽은 것은 자기의  감정을 억제하
 지 못해 일어난 일이었다. 하나는 사랑에 미쳐 생각지도 못하게 죽어버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죽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 그 정확한
 이유를 모르고, 또 이문수에 대한 자기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채 죽어간
 것이었다. 아만이 실종된 것을 알고 소보가 미궁에 뛰어들었던 것은  정말로 생사
 를 초월하는 애정이 있었다는 것과, 그의 성격이 호방하고 거칠다는  것을 보여준
 다. 그리고 이문수가 소보를 위해 다시 미궁에 들어가서 미궁 안의 괴물이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기까지의  그 과정은 슬픔에 대한  초월이자,
 끝없는 사랑의 본능이며, 인성과 지혜가 승화된 일종의 고차원적인 경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들은 소설 {백마소서풍}의 무(武) 속에 정(情)이 있고,  협(俠) 속에
 화근이 있으며, 사건(事件) 속에 인성(人性)이 내재되어 있고, 담담한 묘사 속에 깊
 은 운치가 담겨 있음을 볼 수 있다.
   김용의 무협 소설은 무예와 의협에 대한  묘사가 언제나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
 할 뿐, 목적 그 자체가 되는  경우가 없다. 언제나 하나의 형식으로써 존재할  뿐,
 절대로 그 주제나 내용이 되지 않는다.
   이 {백마소서풍}은 다른 소설에 비해 이 점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무예를 연마하는 것이나, 의협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서는 그저  하나의 도입부
 의 계기로 존재할 뿐이며, 소설 자체로 보았을 때 그것은 그저 하나의  상표에 불
 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 진짜 상품은 인생 속의 사랑에 대한 감상적인 느낌이요,
 정에 의한 업보로 점철되어 있는 인생의 비극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이 소설을 서
 술하고 있는 언어 역시 김용의  소설 중에서도 아주 특이한  독특성을 보여 주게
 된다. 그것은 다른 김용의 작품을 일관하고 있는 서사 중심의 단련되고 정제된 언
 어가 아니라, 감상적인 회포를 다분히 품고 있는 아름답고 유려한  언어와 어조로
 이루어져 있다. 김용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 보고 나서 다시 이 소설을  읽으면 자
 연히 그 독특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우리들이 앞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을 더욱
 잘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을 더욱 확실히 설명하기 위해 다시  소설 속의
 한 단락을 살펴 보기로 하자.
  
   세월은 유수처럼 흘렀다. 세  아이는 초원의 바람을 맞으며  나날이 커갔고, 산
 아래의 눈이 녹을수록 더욱 성숙해졌다. 길가의 꽃은 더욱 아름답게 피어났고, 이
 리를 죽였던 소년은 영준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초원의 천령조는 예전과 마찬가지
 로 아름답게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낮게, 그것도 한밤중에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소보가 이리를 죽였던 그  작은 언덕에서 노래 부를 뿐이었
 다. 그녀는 어렸을 때의 친구를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와 아만이 말을
 달리며 노는 모습을 언제나 바라보았고, 어떤때는 그들 둘이 서로  사랑을 느끼고
 화답하는 노랫소리를 들었다. 이 노래에 숨겨진 뜻을 어렸을 때의  이문수는 이해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녀도 많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만약  여전히 이해하
 지 못했다면 그처럼 상심했을 리가 없엇을 것이며, 그토록 많은 밤을 잠  못 이루
 는 일도 없었을 일이다. 예전에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되었지만, 어릴적의 그 철없
 던 시절로는 영원히 되돌아갈 수 없었다.
  
    다시 소설의 결미 부분의 묘사를 살펴 보자.
  
   백마는 그녀를 태우고 한 발자국씩 중원으로 되돌아 갔다. 백마는 이미 늙어 천
 천히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중원으로 돌아갈 것이다. 강남 지방에는
 버드나무 우거지고, 복숭아 꽃이 만발하여 있고, 제비가 창공을 날고, 금붕어가 연
 못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을 것이다. 한족 사람 가운데도 영준하고  용맹하고 소
 탈하고 깨끗한 소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아가씨는 고집이 있었다.
   "누구나 그것들을 아주 좋아하지만, 그래도 난 싫어."
  
   소설은 이렇게 결말을 맺고 있기 때문에, 뭔가 진행되어 나가다가  중도에서 갑
 자기 멈춰버린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바로 이런 식으로 결말을 맺었기 때문에
 의미의 함축미가 무궁무진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누구나 그것들을 아주  좋아하
 지만, 그래도 난 싫어.>라고 말한 까닭은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영원히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문수도 그랬고, 사중준도 그러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생 역시 이러할는지도 모른다. 미궁 안의 재물을 찾으려고 애썼던  그 강도들마
 저 이러했다. 미궁 안에는 그저  한인들의 생활 용품이나 조각상, 비석만  잇었지,
 그들이 상상하고 바랬던 금은 보물같은 것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  한인들의 생
 활 용품은 당나라 황제가 고창국 사람들에게 억지로 선물로 떠넘긴  것이었을 뿐,
 고창국 사람들은 <들새는 새처럼 날 수가 없고, 쥐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지  못
 하듯이, 너희 중화 사람들이 아무리 좋아해도, 우리 고창의 야인(野人)들은 좋아하
 지 않는> 물건이었다. 역사와 인성이 항상 이처럼 사람들의 바램 대로 되지  않으
 며 심지어는 <인생이 뜻대로  안되는 사람이 열에  여덟, 아홉>이 되기까지 하니
 어찌해야 좋을까? 그저 {백마소서풍}을 다시 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반응형

댓글

💲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