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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광석(1964~96년)씨의 부인 서해순씨가 25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고인과 외동딸의 죽음에 대해서 밝혔다. 고인의 외동딸 서연(당시 16세)양은 2007년 12월 23일 오전 5시 10분쯤 용인의 자택에서 숨졌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굉장히 많이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서해순씨를 뵙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한 점만 짚어보는 인터뷰가 될 것 같습니다. 검찰 재수사를 한다고 합니다. 소환 날짜 받으셨나.
“안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다시 떠오르기는 어렵겠지만 2007년.
“서연이가 학교 다니고 있었습니다. 나이는 17살인데. 장애 1급이라. 학교 아침에 데려다주고 해서. 몸이 안 좋은 애로 키웠는데. 일단은 갑자기 자다가 물 달라고 해서 쓰러져서 병원에 데려갔다. 사망이라고 해서 너무 놀라고 황당했다. 그래서 엄마를 부르고 해야 하는데 아버지가 4월 달에 돌아가시고 해서 형제들과 소송이 안 끝나서 힘들었다. 알린다는 게 겁도 났다. 언제 기회가 되면 알리려고 했었던 거다. 한숨. 다음 다음 날이 방학이었다. 크리스마스. 그냥 조용히 보내는 걸로 장례식을 치루고 했습니다.”
-경황이 없었다는 걸로 사망이 연관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남편 잃고 다시 한국에 왔다가 그런 상황인데 제가 혼자서 데리고 있었다. 식구들이 소송으로 힘들었을 때 봐주고 그런 게 필요했는데 케어가 너무 힘드니까. 식구들과 소원해졌었다. 알리지 않고 싶었습니다. 정말로”
-언제까지
“아빠 친구들께 알리는 것도 그렇고. 아빠 친구들도 없고. 상주가 그렇게 부조금 하는 게”
-(서우양이 아니라)서연양이죠.
“그런 게 장례식이라는 게 서우 안 됐다고 하는 게 조의금 주고 가시는 건데. 그게 남편 잃고 애까지 그렇게 됐다는데 소송하고 연관이 되어 있는데 돈이고 뭐고”
-아버님도 그해 4월 돌아가시고.
“네 그해 4월. 그래서 언니랑 연락 안하고 엄마하고 소원해지고 해서.”
-상식 차원에서 접근하겠습니다. 그로부터 서연양이 사망한 것이 8개월 뒤이기 때문에 부친의 사망으로 경황이 없었다는 것은.
“경황이 없었다는 게 아니고 돈 문제 사업 이런 문제 있고, 엄마 집근처에 보냈다가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제가 다시 데리고 왔다가”
-왜 10년 동안 말씀 안 하셨나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힘든 상황이 돼서 미국으로 가게 됐습니다. 5년 정도 지내다가 한국에 나와서 음반 일 정리도 해야 될 것 같아서 나오게 됐다. 음반 기획사 만나서 서우 잘못됐다고 특별히 관심 가져 주신 적도 없었고. 서우가 항상 외국에 공부하러 가있다고 하니까”
-그래도 중간에 가끔씩 서연이 안부를 묻기도 하고. 그래도 최근에 미국에 있다고 말씀하셨겠죠. 언제 밝힐 예정이었는지.
“후배가 찾아와서 이런 저런 영화가 나오는데 대응하셔야 되지 않느냐고 했다.”
-제가 말씀 드리는 거는 영화와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 건으로 후배들을 만났다. 서우가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하지 큰일이다. 그 다음에 엊그제 옛날 팬클럽 대전에서 와서 난리가 났는데. 서우가 잘못됐다 얘기를 할 상황이 안 됐어요. 미국에 있어서”
-그게 상식적으로 참 이해가 어렵다는 것은 본인도 알고 계시죠.
“일부러 그러지 않았지만 시댁에서도 서우 안부를 묻지도 않았고요.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연락을 하실 줄 알았어요.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었죠. 연락드리려고 했어요. 저한테 연락 안 하셨고. 재산은 로열티 부분이 12년 동안 다 가져 가셨습니다. 상당한 금액입니다. 신나라 레코드랑 계약한 것은 어머니 꼼꼼하셔서 모아 놓고 그걸 그쪽에서 다 가져가셨습니다.”
-JTBC 취재진이 확인해보니까. 서해순씨께서 서연이가 사망한지 한 달 뒤인 2008년 1월부터 5~6년 정도 하와이 거주. 주류 가게 운영한 게 맞는가요.
“네 그렇습니다. 잘 알고 계시네요. 뒷조사를 하고 계시나. 개인정보가 나돌아 다니나. 문제가 있네요.”
-개인정보가 아니라요. 호놀루루 장기간 거주하신 분이 알려주신 겁니다. 아무튼.
“스피드 마트라고 했습니다.”
-따님 애기를 하면서. 그때도. 따님 만나러 한국을 간다고 가게를 맞기고 자주 왔다간다고 해서. 아주 오래된 얘기 아니다. 불과 석 달 전에도 그렇게 했다고 해서.
“그 분은 제가 김광석 누구인지 몰라요. 애가 있나. 애 한국에 있어 그렇게 얘기 했겠지. 김광석 와이프라고 얘기하지는 않았겠죠.”
-최근에 언론에 많이 나오니까 그렇게 알았겠죠. 그 분이 서해순씨의 신분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따님의 존재를 말씀 하셨기 때문에 하와이 교포 사이에서는 그런 애기를 하는 모양입니다. 미국 시민권자 다른 사람과 함께 안택한 것을 보니까.
“저는 e2 비자로 나갔는데요.”
-저작권 문제인가보다.
“그건 상관없는 거죠.”
-감춰 오셨던 거짓말을 하셨던 바로 그런 문제 때문에 서해순씨 개인의 문제라든가 모든 일에 대해서 서해순씨에 애기에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을 많이 분들이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숨”
-저작권 문제 항소심 진행 중에 항소심 진행 중에 서연양이 사망한 거고요.
“항소심이 아니고요. 고등법원인가요. 저희 변호사님이 얘기하시더라고요. 김서연이 미성년자였고 상관이 없다. 제가 피고가 되는 거죠. 서연양이 미성년자라서. 그래서 자꾸 오해를 하시는데. 이미 합의가 변호사님 와 계시는데. 이미 그거는 거기서 종결됐다가 아버님이 2004년에 돌아가셨을 때 4개 판권을 주기로 했을 때 끝났어야 했다.”
-부친이 세상을 뜨시게 되면 서연양에 주기로 했다.
“네 그렇습니다.”
-서연양이 살아있는 것으로 할 때 유리하지 않느냐가 반대쪽에 입장입니다.
“판결문을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데. 판결문은 해결이 됐다고 해서 나중에 와서 해결하려고 변호사님 갖고 계셨었어요. 하와이에 있다가 가게 오픈하느라 바빠서. 대법원 판결문 피고와 위드33 제가 갖고 있는 회사에.”
-잠깐 만요. 그 부분은 제가 이해가 안 가는데. 제가 말씀 드리는 거는 저작권 관련 재판에는 김서연 양이 들어가 있습니다. 지금 그래서 진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도 소송이 많아서.”
-손해 배상 소송이 아니라 인접 저작권 소송입니다. 헷갈리게 말씀해주시면 듣는 분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이거는 저작권 관련 재판이 아닙니다. 대법원 판결은 김서연양이 피고인으로 들어가 있고 서해순씨에게 유리하게 판단이 내려지려면 저작권 관련해서 김서연양이 살아 있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서연이가 죽을 거를 알고 제가”
-그래서 일부로 말씀 안 하셨는 거 아닌가 반대편 쪽에서는
“그거는 아니죠. 미성년자라서 관리하는 게 맞고. 서연이가 크면 주려고 했었죠.”
-제가 말씀 드리는 거는 취재를 해서 말씀 드리는 겁니다. 제가 조사를 하거나 취조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검찰에서 소환할 겁니다. 오늘 말씀 하시는 게 기록도 남게 되니까 신중하게 해주셨으면 좋겠다. 사망신고 언제 하셨습니까.
“늦게 했습니다. 6월 인가 있다가 나왔을 때. 과태료 물고. 뭔가가 날라 와서. 보험금”
-보통 사람인 경우라면 따님이 사망을 했다면 과태료 낼 때까지 안 하고 계셨다는 건.
“그게 마치 제가 큰 저기 한 것처럼 얘기를 하니까. 10년 전 얘기고 장애우가 죽은 얘기라서. 장애 엄마 마음들은 꼭 그래서가 아니고요.”
-2007년 12월에 서연이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는데 잘 있느냐고 2008년 봄이다 이렇게 했다. 모친께서.
“전화 통화 잘 안했다.”
-동사무소에서 서연양 앞으로 있는 25만원 찾아가라. 그래서 사망 신고는 2008년. 그래서 경황이 없다고 하와이 왔다갔다. 반대편에서는 뭐라고 얘기하냐면 대법원 판결 기다린 거 아니냐. 서연양이 생존해 있다고 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시점 상에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에 신고를 한 것이다.
“저는 판결문은 뭐뭐. 그냥 변호사님한테 얘기를 들었으니까 한 거지. 제가 변호사님께 고지를 안 한 것은 맞습니다.”
-대법원에서도 몰랐겠죠.
“저는 신고를 해야 하는 줄도”
-재판에는 서해순씨와 김서연양이 피고인으로 들어가 있는데.
“제가 알기로는 정리가 됐다고 하던데. 그렇게 얘기 하신다면 그걸 알렸다고 하더라도 상속은 제가 받는 겁니다. 큰 아빠가 받는 거도 아니고. 제가 알렸다 하면 제가 손해 배상을 받든 원고로서 저작권을 받던.”
-그거는 김서연양이 돌아갔을 때 받겠죠. 김서연양이 사망했다는 것을 법원이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편에서는 서해순씨한테 유리하게.
“그거는 가져 가시면 되겠죠.”
-그거는 두 분이 말씀 하실 내용이죠. 10년이라는 세월이 오래됐는지는 판단의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김광석씨 얘기를 하겠습니다. 김광석씨는 메모광이라고 하더군요. 자살로 얘기하면서 유서를 한 줄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채팅 방이 있었는데 팬클럽 말들이 많았을 때 사무실 컴퓨터가 있는데 민석아 잘 있니 자판으로 쳤다고”
-그게 유서가 아닌 것 같은데
“네 특별하게 남기지는 않았지요.”
-영화는 보셨는지요.
“아니요.”
-저도 편견을 가질까봐 보지 않았습니다. 왜 사람들은 타살이라고 얘기할까요.
“저는 팬클럽 만나면 2주기 때 참석하고 저도 음반 기획사 일을 하니까 만나고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부분은 없어요. 저는 인터넷 글을 잘 안 읽으니까 의혹을 밝힐 수도 있겠죠.”
-제가 듣기로는 김광석씨 가까운 분은 자살이 아니라고. 보도 나온 거 보니까 119 부른 게 50분 지나서. 대게 그런 일 있으면 119부터. 다른 이유가 있었나요.
“저도 그때 서우 아빠가 누구 만나시고 오셔서. 거실에서 맥주 한 잔 먹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서우 아빠는 음악을 들으러 방에 들어가니까. 중간에 방에서 나오니까 안 보여서 보니까 침대 옥상 올라가는데 기대어 있다. 들어가 자지 왜 여기 있어. 술이 많이 마셨나. 그게 줄이 축 늘어와 있고. 응급 처치를 제가 했습니다. 살아 있는 줄 알고. 50분은 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경황이 없으니까”
-장난 같다는 얘기도 했다던데.
“저는 29살 어릴 때인데 남편이 그러다보니까 장난같이 이렇게 얘기하는 게 와전된거지. 이리 끌려 다니고 저는 경찰서 불려 다니고 상가 집에 있지도 못하고. 제가 물어보는 말에 정신이 없으니까. 연극처럼 간 것 같더라. 그런 얘기가 와전된 것 같다.”
-그게 그렇게 이해가 잘 안되는데 수차례 말씀을 하셨다. 술 먹고 장난하다 그렇게 된거다. 술 먹고 자살을
“어떤 방송입니까”
-그건 제가 들은 영화에서 그렇게 나옵니다.
“네네 이상호 기자님께서. 저는 기억을 못하겠어요.”
-판단은 우리 듣는 분들께서 하시면 될 것 같고요. 오빠가 계셨는데. 오빠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쪽도 있습니다.
“오빠도 조사 받고. 아래층의 여자 부인과 강화도 집이 있어서 왔다 갔다 하실 때라 그래서 바로 119를 하는 게 아니고. 오빠를 부르니까. 오빠가 잠옷 바람으로 같이 올라왔다.”
-김광석씨 타계하기 직전에 술을 나눈 자리에는 두 분만 계셨다. 그 거실에는 담배가 두 가지가 있었다.
“그거는 잘 모르겠는데.”
-종류가 두 가지라서
“저는 안 폈습니다. 누가 오셨었나. 새벽에.”
-그 사이에 누가 왔을 것인가.
“김광석씨가 담배를 좋아하셔서. 술집에서 여러 개를 할 수도 있고.”
-새벽에 3시에 누가 올 사람이 있나요. 그 부분도 소환되셔서 조사 받게 되시면 그거는 수사 대상은 아닙니다. 지났기 때문에 일단 알겠습니다. 시간은 다 됐다고 하는데 거의 마무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광석씨 93년도 신나라 레코드 음반 계약을 하면서 아버지 이름을 올렸습니다. 소송의 시초인데.
“건물을 줬는데 수입 이런 게 일정한 게 없었다. 그러다보니까 세금 보고를 해야 하니까. 세금이 나올 거다. 아버님 이름도 같이 하는 게 낫겠다. 건물은 김광석씨랑 저랑 공동 명의를 했다. 이름만 저희가 빌린 겁니다. 세금 이런 것 때문에.”
-김광석씨 건에 대해서 워낙 많은 애기들이 왔다 갔다 했다. 짧은 인터뷰에서 모든 걸 여쭤보기는 어렵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밝히실 의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질문은 계속 받으셨을 것 같고요.
“그러니까 미스터리하게 음악인 있으시면 그런 얘기가 나오니까 저를 의심해서. 저도 죽으면 미스터리하게 되겠네요.(웃음)”
재반론을 있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다음은 인터뷰 전문.
-굉장히 많이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서해순씨를 뵙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한 점만 짚어보는 인터뷰가 될 것 같습니다. 검찰 재수사를 한다고 합니다. 소환 날짜 받으셨나.
“안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다시 떠오르기는 어렵겠지만 2007년.
“서연이가 학교 다니고 있었습니다. 나이는 17살인데. 장애 1급이라. 학교 아침에 데려다주고 해서. 몸이 안 좋은 애로 키웠는데. 일단은 갑자기 자다가 물 달라고 해서 쓰러져서 병원에 데려갔다. 사망이라고 해서 너무 놀라고 황당했다. 그래서 엄마를 부르고 해야 하는데 아버지가 4월 달에 돌아가시고 해서 형제들과 소송이 안 끝나서 힘들었다. 알린다는 게 겁도 났다. 언제 기회가 되면 알리려고 했었던 거다. 한숨. 다음 다음 날이 방학이었다. 크리스마스. 그냥 조용히 보내는 걸로 장례식을 치루고 했습니다.”
-경황이 없었다는 걸로 사망이 연관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남편 잃고 다시 한국에 왔다가 그런 상황인데 제가 혼자서 데리고 있었다. 식구들이 소송으로 힘들었을 때 봐주고 그런 게 필요했는데 케어가 너무 힘드니까. 식구들과 소원해졌었다. 알리지 않고 싶었습니다. 정말로”
-언제까지
“아빠 친구들께 알리는 것도 그렇고. 아빠 친구들도 없고. 상주가 그렇게 부조금 하는 게”
-(서우양이 아니라)서연양이죠.
“그런 게 장례식이라는 게 서우 안 됐다고 하는 게 조의금 주고 가시는 건데. 그게 남편 잃고 애까지 그렇게 됐다는데 소송하고 연관이 되어 있는데 돈이고 뭐고”
-아버님도 그해 4월 돌아가시고.
“네 그해 4월. 그래서 언니랑 연락 안하고 엄마하고 소원해지고 해서.”
-상식 차원에서 접근하겠습니다. 그로부터 서연양이 사망한 것이 8개월 뒤이기 때문에 부친의 사망으로 경황이 없었다는 것은.
“경황이 없었다는 게 아니고 돈 문제 사업 이런 문제 있고, 엄마 집근처에 보냈다가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제가 다시 데리고 왔다가”
-왜 10년 동안 말씀 안 하셨나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힘든 상황이 돼서 미국으로 가게 됐습니다. 5년 정도 지내다가 한국에 나와서 음반 일 정리도 해야 될 것 같아서 나오게 됐다. 음반 기획사 만나서 서우 잘못됐다고 특별히 관심 가져 주신 적도 없었고. 서우가 항상 외국에 공부하러 가있다고 하니까”
-그래도 중간에 가끔씩 서연이 안부를 묻기도 하고. 그래도 최근에 미국에 있다고 말씀하셨겠죠. 언제 밝힐 예정이었는지.
“후배가 찾아와서 이런 저런 영화가 나오는데 대응하셔야 되지 않느냐고 했다.”
-제가 말씀 드리는 거는 영화와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 건으로 후배들을 만났다. 서우가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하지 큰일이다. 그 다음에 엊그제 옛날 팬클럽 대전에서 와서 난리가 났는데. 서우가 잘못됐다 얘기를 할 상황이 안 됐어요. 미국에 있어서”
-그게 상식적으로 참 이해가 어렵다는 것은 본인도 알고 계시죠.
“일부러 그러지 않았지만 시댁에서도 서우 안부를 묻지도 않았고요.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연락을 하실 줄 알았어요.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었죠. 연락드리려고 했어요. 저한테 연락 안 하셨고. 재산은 로열티 부분이 12년 동안 다 가져 가셨습니다. 상당한 금액입니다. 신나라 레코드랑 계약한 것은 어머니 꼼꼼하셔서 모아 놓고 그걸 그쪽에서 다 가져가셨습니다.”
-JTBC 취재진이 확인해보니까. 서해순씨께서 서연이가 사망한지 한 달 뒤인 2008년 1월부터 5~6년 정도 하와이 거주. 주류 가게 운영한 게 맞는가요.
“네 그렇습니다. 잘 알고 계시네요. 뒷조사를 하고 계시나. 개인정보가 나돌아 다니나. 문제가 있네요.”
-개인정보가 아니라요. 호놀루루 장기간 거주하신 분이 알려주신 겁니다. 아무튼.
“스피드 마트라고 했습니다.”
-따님 애기를 하면서. 그때도. 따님 만나러 한국을 간다고 가게를 맞기고 자주 왔다간다고 해서. 아주 오래된 얘기 아니다. 불과 석 달 전에도 그렇게 했다고 해서.
“그 분은 제가 김광석 누구인지 몰라요. 애가 있나. 애 한국에 있어 그렇게 얘기 했겠지. 김광석 와이프라고 얘기하지는 않았겠죠.”
-최근에 언론에 많이 나오니까 그렇게 알았겠죠. 그 분이 서해순씨의 신분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따님의 존재를 말씀 하셨기 때문에 하와이 교포 사이에서는 그런 애기를 하는 모양입니다. 미국 시민권자 다른 사람과 함께 안택한 것을 보니까.
“저는 e2 비자로 나갔는데요.”
-저작권 문제인가보다.
“그건 상관없는 거죠.”
-감춰 오셨던 거짓말을 하셨던 바로 그런 문제 때문에 서해순씨 개인의 문제라든가 모든 일에 대해서 서해순씨에 애기에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을 많이 분들이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숨”
-저작권 문제 항소심 진행 중에 항소심 진행 중에 서연양이 사망한 거고요.
“항소심이 아니고요. 고등법원인가요. 저희 변호사님이 얘기하시더라고요. 김서연이 미성년자였고 상관이 없다. 제가 피고가 되는 거죠. 서연양이 미성년자라서. 그래서 자꾸 오해를 하시는데. 이미 합의가 변호사님 와 계시는데. 이미 그거는 거기서 종결됐다가 아버님이 2004년에 돌아가셨을 때 4개 판권을 주기로 했을 때 끝났어야 했다.”
-부친이 세상을 뜨시게 되면 서연양에 주기로 했다.
“네 그렇습니다.”
-서연양이 살아있는 것으로 할 때 유리하지 않느냐가 반대쪽에 입장입니다.
“판결문을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데. 판결문은 해결이 됐다고 해서 나중에 와서 해결하려고 변호사님 갖고 계셨었어요. 하와이에 있다가 가게 오픈하느라 바빠서. 대법원 판결문 피고와 위드33 제가 갖고 있는 회사에.”
-잠깐 만요. 그 부분은 제가 이해가 안 가는데. 제가 말씀 드리는 거는 저작권 관련 재판에는 김서연 양이 들어가 있습니다. 지금 그래서 진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도 소송이 많아서.”
-손해 배상 소송이 아니라 인접 저작권 소송입니다. 헷갈리게 말씀해주시면 듣는 분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이거는 저작권 관련 재판이 아닙니다. 대법원 판결은 김서연양이 피고인으로 들어가 있고 서해순씨에게 유리하게 판단이 내려지려면 저작권 관련해서 김서연양이 살아 있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서연이가 죽을 거를 알고 제가”
-그래서 일부로 말씀 안 하셨는 거 아닌가 반대편 쪽에서는
“그거는 아니죠. 미성년자라서 관리하는 게 맞고. 서연이가 크면 주려고 했었죠.”
-제가 말씀 드리는 거는 취재를 해서 말씀 드리는 겁니다. 제가 조사를 하거나 취조를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검찰에서 소환할 겁니다. 오늘 말씀 하시는 게 기록도 남게 되니까 신중하게 해주셨으면 좋겠다. 사망신고 언제 하셨습니까.
“늦게 했습니다. 6월 인가 있다가 나왔을 때. 과태료 물고. 뭔가가 날라 와서. 보험금”
-보통 사람인 경우라면 따님이 사망을 했다면 과태료 낼 때까지 안 하고 계셨다는 건.
“그게 마치 제가 큰 저기 한 것처럼 얘기를 하니까. 10년 전 얘기고 장애우가 죽은 얘기라서. 장애 엄마 마음들은 꼭 그래서가 아니고요.”
-2007년 12월에 서연이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는데 잘 있느냐고 2008년 봄이다 이렇게 했다. 모친께서.
“전화 통화 잘 안했다.”
-동사무소에서 서연양 앞으로 있는 25만원 찾아가라. 그래서 사망 신고는 2008년. 그래서 경황이 없다고 하와이 왔다갔다. 반대편에서는 뭐라고 얘기하냐면 대법원 판결 기다린 거 아니냐. 서연양이 생존해 있다고 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에 시점 상에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에 신고를 한 것이다.
“저는 판결문은 뭐뭐. 그냥 변호사님한테 얘기를 들었으니까 한 거지. 제가 변호사님께 고지를 안 한 것은 맞습니다.”
-대법원에서도 몰랐겠죠.
“저는 신고를 해야 하는 줄도”
-재판에는 서해순씨와 김서연양이 피고인으로 들어가 있는데.
“제가 알기로는 정리가 됐다고 하던데. 그렇게 얘기 하신다면 그걸 알렸다고 하더라도 상속은 제가 받는 겁니다. 큰 아빠가 받는 거도 아니고. 제가 알렸다 하면 제가 손해 배상을 받든 원고로서 저작권을 받던.”
-그거는 김서연양이 돌아갔을 때 받겠죠. 김서연양이 사망했다는 것을 법원이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편에서는 서해순씨한테 유리하게.
“그거는 가져 가시면 되겠죠.”
-그거는 두 분이 말씀 하실 내용이죠. 10년이라는 세월이 오래됐는지는 판단의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김광석씨 얘기를 하겠습니다. 김광석씨는 메모광이라고 하더군요. 자살로 얘기하면서 유서를 한 줄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채팅 방이 있었는데 팬클럽 말들이 많았을 때 사무실 컴퓨터가 있는데 민석아 잘 있니 자판으로 쳤다고”
-그게 유서가 아닌 것 같은데
“네 특별하게 남기지는 않았지요.”
-영화는 보셨는지요.
“아니요.”
-저도 편견을 가질까봐 보지 않았습니다. 왜 사람들은 타살이라고 얘기할까요.
“저는 팬클럽 만나면 2주기 때 참석하고 저도 음반 기획사 일을 하니까 만나고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부분은 없어요. 저는 인터넷 글을 잘 안 읽으니까 의혹을 밝힐 수도 있겠죠.”
-제가 듣기로는 김광석씨 가까운 분은 자살이 아니라고. 보도 나온 거 보니까 119 부른 게 50분 지나서. 대게 그런 일 있으면 119부터. 다른 이유가 있었나요.
“저도 그때 서우 아빠가 누구 만나시고 오셔서. 거실에서 맥주 한 잔 먹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서우 아빠는 음악을 들으러 방에 들어가니까. 중간에 방에서 나오니까 안 보여서 보니까 침대 옥상 올라가는데 기대어 있다. 들어가 자지 왜 여기 있어. 술이 많이 마셨나. 그게 줄이 축 늘어와 있고. 응급 처치를 제가 했습니다. 살아 있는 줄 알고. 50분은 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경황이 없으니까”
-장난 같다는 얘기도 했다던데.
“저는 29살 어릴 때인데 남편이 그러다보니까 장난같이 이렇게 얘기하는 게 와전된거지. 이리 끌려 다니고 저는 경찰서 불려 다니고 상가 집에 있지도 못하고. 제가 물어보는 말에 정신이 없으니까. 연극처럼 간 것 같더라. 그런 얘기가 와전된 것 같다.”
-그게 그렇게 이해가 잘 안되는데 수차례 말씀을 하셨다. 술 먹고 장난하다 그렇게 된거다. 술 먹고 자살을
“어떤 방송입니까”
-그건 제가 들은 영화에서 그렇게 나옵니다.
“네네 이상호 기자님께서. 저는 기억을 못하겠어요.”
-판단은 우리 듣는 분들께서 하시면 될 것 같고요. 오빠가 계셨는데. 오빠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쪽도 있습니다.
“오빠도 조사 받고. 아래층의 여자 부인과 강화도 집이 있어서 왔다 갔다 하실 때라 그래서 바로 119를 하는 게 아니고. 오빠를 부르니까. 오빠가 잠옷 바람으로 같이 올라왔다.”
-김광석씨 타계하기 직전에 술을 나눈 자리에는 두 분만 계셨다. 그 거실에는 담배가 두 가지가 있었다.
“그거는 잘 모르겠는데.”
-종류가 두 가지라서
“저는 안 폈습니다. 누가 오셨었나. 새벽에.”
-그 사이에 누가 왔을 것인가.
“김광석씨가 담배를 좋아하셔서. 술집에서 여러 개를 할 수도 있고.”
-새벽에 3시에 누가 올 사람이 있나요. 그 부분도 소환되셔서 조사 받게 되시면 그거는 수사 대상은 아닙니다. 지났기 때문에 일단 알겠습니다. 시간은 다 됐다고 하는데 거의 마무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광석씨 93년도 신나라 레코드 음반 계약을 하면서 아버지 이름을 올렸습니다. 소송의 시초인데.
“건물을 줬는데 수입 이런 게 일정한 게 없었다. 그러다보니까 세금 보고를 해야 하니까. 세금이 나올 거다. 아버님 이름도 같이 하는 게 낫겠다. 건물은 김광석씨랑 저랑 공동 명의를 했다. 이름만 저희가 빌린 겁니다. 세금 이런 것 때문에.”
-김광석씨 건에 대해서 워낙 많은 애기들이 왔다 갔다 했다. 짧은 인터뷰에서 모든 걸 여쭤보기는 어렵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밝히실 의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질문은 계속 받으셨을 것 같고요.
“그러니까 미스터리하게 음악인 있으시면 그런 얘기가 나오니까 저를 의심해서. 저도 죽으면 미스터리하게 되겠네요.(웃음)”
재반론을 있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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