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자료

서해순 경향신문 인터뷰 2017.11.14

kcyland 2017.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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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광석씨 딸 ‘서연양 사망사건’과 관련해 고소·고발됐다가 최근 ‘무혐의’ 결론이 난 김씨의 부인 서해순씨(52)가 경찰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처음으로 심경을 털어놨다. 서씨는 “그 많은 의혹에 대해 수 차례 해명을 했지만, 사람들은 제 해명을 듣지 않으려 한다”며 “다들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이 지난 13일 저녁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서씨의 회사 위드삼삼뮤직 사무실에서 서씨를 만났다. 책상과 탁자 옆에는 김씨의 사진과 캐리커처, 김씨와 딸 서연양이 함께 찍은 사진 등이 놓여 있었다. 딸 서연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자신을 서연양 유기치사·소송사기 혐의로 고소·고발한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와 김씨의 형 김광복씨를 언급할 때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인터뷰는 1시간30분 가량 진행됐다.

서씨는 “(영화 <김광석>이 개봉한 뒤부터) 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팠다. 공황장애 약 먹고, 갱년기에 우울증까지 온 상황이었다”면서 “그걸 다스리려고 되도록 이상호씨 영화도 안보고, 기사 댓글도 안봤다. 나도 버티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서씨는 “잘못하면 높은 데서 뛰어내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집에) 서연이 물건도 그대로 있고, 수영하고 바비큐 해먹던 기억도 있다. 서연이와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씨는 일상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생활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씨는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어느 할머니가 ‘서해순 맞죠?’ 이러신다. 깜짝 놀라서 ‘제 언니에요’라고 말했다”며 “어디 나가지도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단기간에 전국에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최순실과 서해순 밖에 없다는 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영화를 만든 이상호 기자에 대해서는 “이상호씨가 자기 영화 홍보를 위해서, 돈벌이를 위해 남을 완전히 살인자로 몰았다”면서 “그게 얼마나 피눈물나는 일인가. 엄마가 그런 일 당했다는 사실을 알면 서연이가 어떤 심정이었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무혐의’라고 판단한 지금도 이 기자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며 ‘투사’인양 행세하고 있다”며 “경찰 수사 결과를 믿지 않으면 무엇을 믿는다는 말인가. 이제라도 자신의 영화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잘못했다고 하고, 취재가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미흡했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서씨는 김광석씨 음반 저작권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는 데에 대해서는 적극 해명했다. 그는 “사실 김광석씨가 부른 곡은 많아도 작사 작곡한 건 많지 않다. ‘거리에서’, ‘기다려줘’, ‘사랑했지만’,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는 김광석씨가 불렀지만 작사·작곡한 건 아니다”라며 “사람들은 내가 얘기를 안하니까 (이런 노래들의 저작권료를) 다 내가 가져가는 줄 안다. 그동안 나 혼자 속 썩고 인터뷰도 안하고 숨 죽이며 살았다”고 말했다. 또 비영리 목적의 김광석 추모공연 등에는 음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미제 사건의 공소시효를 대폭 확대하는 ‘김광석 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존 ‘태완이 법’의 시효를 늘리자는 법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왜 그 법의 이름에 ‘김광석’을 넣어야 하나.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고 반발했다. 서씨는 “나이들면 사업들을 정리하고 사단법인을 만들어 관리할 계획”이라며 “(가부키 증후군을 앓았던) 서연이를 위해 가부키 증후군 관련 단체에도 기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서해순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이상호 기자의 영화 <김광석>이 개봉된 후 비난하는 여론도 상당했다. 

“보고 있으면 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팠다. 공황장애 약 먹고, 갱년기와 겹치면서 우울증까지 온 상황이었다. 그걸 다스리려고 되도록 이상호씨 영화도 안보고, 기사 댓글도 안봤다. 저도 참느라고 참 힘들었다. 잘못하면 높은 데서 뛰어내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인건 제가 지금 사는 집이 서연이하고 살던 집이다. 테라스와 마당이 있어서 답답하면 거기 나간다. 서연이 물건도 그대로 있고, 수영하고 바비큐해 먹던 기억도 있다. 서연이와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경찰에서 무혐의라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이상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 많은 의혹에 대해 수 차례 해명을 했지만 사람들은 제 해명을 듣지 않으려 한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 이 사건을 다뤘던 종편 프로그램의 패널들은 정확하게 얘기를 하지 않는다. 평범한 집은 딸이 잘못됐으면 숨기지 않고 친인척들 다 부른다. 다들 슬퍼해주고 정상적으로 장례식을 치른다. 그런데 나는 혼자였다. 서연이를 혼자 키우면서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돌봐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 집에서 서연이 한번이라도 데려가서 밥을 차려준다거나, 서연이 학비 얘기를 꺼낸다든가 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외국에 있다가 한국에 와서 서연이한테 할머니한테 전화해보라고 시켰는데 ‘서연아 한번 와라’ 이런 말이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다른 말을 한다. (※김광석씨 형 김광복씨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서연이가 할머니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고, 서연이가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다 ‘엄마 와요, 끊어야 해요’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건 내가 서연이에게 전화를 시킨거다. 서연이가 한국에 왔다고 그런 식으로 알린 거다. 그러니까 그 증오감이 얼마나 컸겠나. 서연이를 그렇게 안 찾던 사람들이 지금 서연이가 잘못됐다고 얘기할 자격이 있나. 다 미워서 연락하지 않은거다. 그게 제 마음이었다. 단지 제일 가까이 있던 동백중학교 장애반 친구들 엄마들한테 얘기 못한건 좀 미안했다”


-마녀사냥이라고 생각하나.

“이상호씨가 자기 영화 홍보 위해서, 돈벌이를 위해 남을 완전히 살인자로 몰았다. 타살 의혹 제기하고 국회의원 힘 동원하고 나는 무참히 당해야했다. 그게 얼마나 피눈물나는 일인가. 김광석씨도 아내가 이렇게 살인자 누명쓰고 더러운 여자 취급당하고 그런 걸 원할까. 엄마가 그런 일 당했다는 사실을 알면 서연이가 어떤 심정이었을까. 얼마나 눈물을 흘릴까. 영화 <김광석>이 나온다고 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하다가 잠이 들었다. 잠결에 서연이가 내 손을 잡는 것 같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고나서 이런일이 벌어졌다.(눈시울 붉어짐) 아 엄마한테 메시지를 준거구나. 엄마 힘든 일 있을거니 좀 참으라고. 제가 죽으면 완벽한 스토리 아닌가. 다들 그걸 바라는 것 같다. 이상호가, 사회가 그렇게 몰아가는 것 같다”

-김광복씨와 이상호 기자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 형사고소도 진행 중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어느 할머니가 ‘서해순 맞죠?’ 이러신다. 깜짝 놀라서 ‘제 언니에요’라고 말했다. 어디 나가지도 못한다. 사람들이 제 얼굴하고 이름을 정확하게 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단기간에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최순실하고 서해순 밖에 없다고도 얘기한다. 제가 누굴 만났다는 둥 개인사로 절 엮으려고 하는데 여자라고 당한 것들, 억울하고 그런 부분들 소송으로 다 진행하겠다. 이상호씨는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평범한 ‘아줌마’인데, 거의 스토킹하는 수준이었다. 자기가 김광석 동생이나 되는 것처럼 파헤친다고 하고. 경찰이 ‘무혐의’라고 판단한 지금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며 ‘투사’인양 행세하고 있다. 경찰 수사 결과를 믿지 않으면 무엇을 믿는다는 말인가. 이제라도 자신의 영화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잘못했다고 하고, 취재가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미흡했다고 말해야 한다. 수긍하지 않으면 좋은 사람, 좋은 언론인이 될 수 없다. 김광복씨도 과거 저작권 합의 내용과 소송 내용을 잘 알고 있고, 소송사기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텐데 저를 고소했다”

-이상호 기자를 고발하는 영화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조사를 받는 상황에서 너무 화가 나서 한 말인데, 이상호씨가 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면 수백개도 만들수 있다는 얘기다. 나도 주변에 감독, PD다 있다. 제작비는 얼마 안들겠더라. 이상호씨를 다룬 영화 추진할 만도 하지 않겠나.(웃음) 또 이상호씨는 자신이 만든 영상물에 내 얼굴 사진을 막 가져다 쓴다. 미국 뉴욕에서 찍은 김광석씨 사진은 다 내가 찍은 것들이다. 이런 얘기하면 나보고 자꾸 돈만 밝힌다고들 하는데 나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다. 나는 공인이 아니다. 어디서든 내 얼굴 사진 막 갖다 쓰면 이의제기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김광석씨의 지인들은 김씨의 저작권을 공익적인 차원에서 풀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못 쓰게 막은 적 없다. (2008년 김광복 측과의 파기환송심 조정과정에서) ‘김광석 장학재단’ 설립을 위한 공연과 팬클럽이 벌이는 추모공연 등 비영리 공연에서 김광석씨 음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내가 양보했다. 다만 뮤지컬 ‘디셈버’측과 계약을 할때는 김광석씨 곡을 자기들이 다 쓰게 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이후에 뮤지컬 ‘그날들’에서도 김광석씨 곡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디셈버와 계약을 해서 그건 좀 곤란하다고 답했다. 그런데 사실 김광석씨가 부른 곡은 많아도 작사 작곡한 건 많지 않다. ‘거리에서’, ‘기다려줘’, ‘사랑했지만’,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는 김광석씨가 불렀지만 작사·작곡한 건 아니다. 그래서 이들 곡으로 극을 만들면 그대로 뮤지컬이 된다. 김광석씨 곡이 하나도 없어도 ‘김광석이 부른 노래로 만든 뮤지컬’ 이렇게 홍보한다. 아무런 법적인 문제가 안된다. 그런 상황인데 내가 무슨 법적인 대응을 하겠나. 사람들은 내가 얘기를 안하니까 다 내가 가져가는 줄 안다. 저작권 수입은 지금은 1년에 1억 얼마였지만, 처음에는 300~500만원 수준이었다. 최근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좀 리메이크되면서 저작권 수입이 많아졌다. 그동안 나 혼자 속 썩고 인터뷰도 안하고 숨 죽이며 살았다. 서연이가 없어서 더 나서지 못한 것도 있다”

-일각에서는 ‘김광석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 법은 좋은 취지라고 생각한다. 기존 ‘태완이 법’의 시효를 늘리자는 법의 취지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법에 김광석씨의 이름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김광석 법에 대해선 아직 얘기 안했지만 곧 얘기할 거다. 무조건 청원하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겠나”(※인터뷰 다음날인 14일 오전, 서씨의 변호인 박훈 변호사는 ‘김광석 법’이 서씨가 김광석을 타살했다는 의혹을 전제로 하는 법이라며, 이를 추진하는 의원들과 온라인으로 청원하는 네티즌들에 대해 법적대응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최근까지 김광석씨 고향인 대구에서 ‘김광석 스토리하우스’를 만드는 등 일을 진행했다.

“대구의 김광석 스토리하우스는 올해 7월 개관했다. 대구 중구청에서 집을 마련했는데. 예전에 살던 서교동 집과 비슷했다. 마당이 정말 예뻤다. 서교동 집은 공사를 해서 건물을 올렸지만, 나중에는 건물을 올리지 않고 마당에서 서연이랑 살았으면 더 좋았겠다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토리하우스는 서연이하고 살았으면 좋았겠다 싶게 조그맣게 마당도 있었다. 스토리하우스에 진짜 김광석씨가 썼던 소파, 의자, 탁자, 시계, 기타 등을 전시하고 팬들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거기에는 서연이 사진도 있다. 서연이 사진을 해놓은 건 제 나름의 추모였다. 사실 가까운 분들이 서연이를 궁금해하고 있었고 저도 본의아니게 자꾸 거짓말을하게 되니까 (그런 것들을 준비하면서) 서연이 얘기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계획은.

“나이 들었으니 사업들 정리하고, 서연이에게도 서연이 몫을 남겨주고 싶다. 서연이가 앓았던 ‘가부키 증후군’ 등과 관련된 재단에 기증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김광석씨와 관련된 부분은 많은 분들이 하고 계시니까 합의가 되면 같이 할 수 있다. 대구에서 사단법인(김광석 행복나눔재단)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니 그쪽에서 같이 관리할 수 있게끔 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다만 사단이나 재단은 만들어질 경우, 세대가 지나면 그 권리가 엉뚱한 사람에게 가는 게 문제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갖고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재덕·심윤지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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